여행2014. 2. 6. 23:48

 

그렇게 시간을 떼우고 돌아오니 1시. 다행히도 체크인이 가능했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자리에 누웠다.
아무래도 전날 잠을 설쳐 피곤했다. 뭘 하려고해도, 조금이라도 잔 다음 다시 하기로 하고. 3시 반쯤 일어났다.
무얼 하기에는 딱히 애매한 시간이라. 테오도시우스 성을 가기로 했다. 대신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갈 때는 도보로.
트렘 노선을 따라 가면 되니 뭐 길 잃을 걱정은 없다. 엄밀히 따지면 북쪽의 내륙지방으로 가는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폴랜드, 헝가리가 나오겠지. 트렘을 따라 상권이 발달했다.
기념품을 좀 살까 싶기도 했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맘 편하게 걸었다.

 

 양탄자로 유명한 터키, 번화가마다 심심찮게 요런 상점들을 볼 수 있다.

 빵 만큼이나 젤리도 많은 터키, 견과류가 유명해서 그런지 다양한 견과류 젤리를 볼 수 있다.

 옛 도시의 정취가 느껴지는 터키 거리, 우리나라 궁궐의 박석이 생각난다.

터키의 기념품 상점, 모자이크 램프는 들고 가기 어렵지 않을까?

 

그러다 아사라이쯤 배가 아팠다.
어디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았다. 숙소에서 나온지도 얼마 안 됐는데. 하필 배가 아플 건 모람.
어쨌든간 그런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메트로 표시가 있어. 지상 WC를 찾았찌만 안 보였다. 젠장.
전방 100m 쯤에 큰 건물이 보여. 뭐 있겠지 싶어 일단 전진했다. 무슨 백화점 같았다.
1층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엑스레이를 통해 소지품 검사를 한다. 뭐지? 치안이 제법이네? 뭐 일단 급한 마음에 천장을 봤다.
화장실 표지판을 찾으려. 1층에는 없는 것 같아. 눈을 좀더 들어 2층을 보니 남녀 표시가 보였따.
옳거니. ㅎㅎ 궁즉통이라 햇던가. 급하니. 시야 확보 수준이 박지성이다. ㅋㅋㅋ

트렘 역 기준으로 파자르테케까지 10정거장. 아사라이가 6번째니깐 반이상 온거다.
구도시 중심지를 벗어나니. 슬슬 주택 지역이다. 대학교를 지나 좀 더 걸으니 멀리 성벽이 보였다.
오호. 가슴 설레인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성벽 앞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에 담았다.
그런데 첫인상은 솔직히 별로였다. 성벽이 허물어져서도, 남은 것이 별로 없어서도, 해자 위치에 밭이 있기 때문은 아니였다.
내가 책에서 봤던 3단 성벽은 천혜 자연에 기댄 난공불락의 '요새'였는데 난공불락의 포스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원을 한다고 해도 자금성의 높이, 해자가 보존된 오사카성 위용에도 못 미칠 것 같다.
오히려 공격하는 측에서 그간 공성전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었던 게 난공불락이란 거품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해자는 메워지고, 성벽은 노쇠했다. 전반적으로 많이 방치된 듯.

 성벽은 그래도 사람들 곁에서 친숙한 대상이다.

  뜻은 모르겠지만, 이겼다는 말이겠지? 그냥 그러려니...

그래도 왔으니,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렀다. 이 성벽에 관한 설명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어라 알 수 없음. 다만 1493이란 숫자가 써있어. 그렇게 판단 함) 설명도 찍었다.
그리고 잠깐 그때를 상상했다. 저 멀리서 죽음의 그림자 처럼 스멀스멀 다가 오늘 오스만 병사들.
천둥 소리보다 더 큰 대포소리. 배수진을 친 방어군의 공포감. 이 성벽 마주보며 다른 생각을 했을 그들.
성벽이 뚫렸을 때 적진으로 뛰어 기꺼이 생을 마감한 황제와 약탈에 눈이 멀었을 병사들.
마지막으로 개선한 술탄의 모습까지... 내가 왔떤 길을 말을 타고 달리면 5분이면 족할 것이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전쟁에 대한 댓갈로 눈에 보이는 대로 약탈하고 겁탈했을 것이다.
순간 아수라장이 됐겠지. 정말 신은 있을까? 있다면, 알라신이 이겼다고 봐야할까?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긴한데...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2. 6. 23:27

 

지도를 펴 주위를 살폈다. 현위치 찾기가 어려웠다.
누가봐도, 어리숙한 관광객이다. 이런 먹잇감을 호객꾼들이 놓칠리 없다.
여름 날 빈 콜라캔에 개미 꼬이듯 마구 달려든다.
솔직히 그들이 파는 제품이 괜찮았으면, 나도 관광객인지라 한 번 정도 고민했을텐데.
철 지나 누런 관광책자 이런 것을 들이대니, 정말 호구 아니고서 누가 사겠나?
대충 쌩까고, 정확한 현 위치 파악을 위해 트렘을 찾았다.

갑자기 어제 밥 먹으며 한국인 아줌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스탄불은 길이 꼬불꼬불해 다니기 불편하다고.
그때 나는 오히려 그런 낯섬이 여행자가에게 새로운 경험 줄거란 생각에 속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을 처음 겪으니,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야간 버스타고 난 뒤라 몸 상태가 안 좋았고, 짐이 많아... 오래 걷기 힘들었다.

표지판(이정표)가 잘 안 돼 있어 자꾸 헤맸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어떤 여행업체에서 병행하는 투어리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길을 물었다.
핸드폰에서 캡쳐한 사진을 보여줬더니. 어쩌구, 저쩌구... 영어가 잘 안 돼 하는 20%만 알아 들었다.
고스레이트 라이트 앤 블라블라. 그리고 빅퓌시 어쩌구 저쩌구... 그래 일단 가자. 가서 또 물어보자...
짐짝을 끌고... 걸었다. 열심히 걷다 도무지 모르겠어서 다시 핸드폰 지도를 봤다.
그러다 우연인지 잠깐 와이파이가 잡혀서, 현위치가 떳다. 그런데. 오히려 목적지와 반대 방향 아닌가?
쌰부랄. 뭐지. 그 아저씨? 잘못 알려준건가? 시팔시팔 거리며 왔던 거리를 다시 왔다.
더웠다. 표지판만 제대로 돼 있어도. 길 거리 보면서 찾아갈텐데. 여긴 왜 이따위야. 진심 짜증났다.
아까 헤매다 봤던 신바드 호스텔이 떠올랐다. 한국인들이 잘 가는 숙소라는데. 걍 거기라도 갈까?
아니다. 뭐 정 안 되면 택시 타지 뭐. 쌰불쌰불 되는데. 자전거 타며 지나가는 청년이 내게 말을 건다.
웃는 낯짝에 침 못 뱉는다고. 이 자식이 호객꾼꾼일지라도 웃으면 말 거는데. 쌩까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하와유 뭐 이런 기본적인 인사를 하다가, 어디 가냐기에 빅애플 호스텔이다. 하니깐.
자기가 몇 달전까지 거기 일했다 한다. 엥? 이게 왠 횡재?
내가 지도를 보여주며, 내가 지나왔던 인포메이션 방향 아니냐니깐. 아니란다.
되돌아 왔던 길에서 조금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자기가 현재 일하는 가게가 거기서 아주 가깝다며, 명함을 준다.
어쨌든 아까 그 인포메이션 센터 아저씨 말이 맞았으며. 이 사람을 만난 게... 정말 행운이었다.
아니였으면 계속 헤맷을테니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서 표지판(무스타파)를 확인하고, 악빅 스트릿 방향으로 접어 들었다.
가로막힌 길이 있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근처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었다.
백인 여자가 친절하게 고 앤 라이트 앤 레프트라 해준 말을 기억하고. 짐 끌고 다시 이동했다.
자꾸 가로 막힌 길 같아 불안했는데. 조금 지나자 악빅 스트릿이 나왔다.
나름 기준점이라 생각한 노벨 호스텔이 나와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아까 만난 청년이 일한다는 오션스 7이 보였다.
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접어 드니 빅애플 호스텔 간판이 나왔다.

 

 아리스타 바자르, 다른 바자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소소한 맛이 느껴지는 상가

 

나중에 알았는데. 이 곳 체크인 시각은 2시다. 내가 10시 쯤 도착했으니깐. 아직 내 자리가 준비 안 됐다.
짐을 한쪽에 두고 앉아 있으려니 할게 없었다. 그래서 샤워가 가능하냐 물었고. 가능하다기에 바로 씻으러 갔다.
그런데 수건이 없었다. 내가 되려는 사람인지. 어쨋든간 스포츠 타월이 있어. 그걸로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했다.
좀 찝찝한 것은 내가 떠나는 4일 동안, 그 타올이 거기 걸려 있었다. 그 이전에 얼마나 더 걸려 있었을까? 쩝.

아침 가능하냐고 물어 보려고 했으나. 시간도 그렇고. 염치도 없고 해서. 현아와 통화하고 밖으로 나왔다.
출출한 김에 아침을 해결하고자 식당을 물색했다. 아까 그 청년은 없었지만, 나에겐 은인 같은 사람으로 그가 일하는 식당에서
뭐 하나라도 팔아주는 게 예의인 것 같았다. 그래서 메뉴판 앞에서 가격을 보고 잇으니 어떤 사람이 와서 앉으라 권했다.
제일 저렴할 것 같은 breakfast 가능하냐고 물었다. 된다기에 별 부담 없이 시켰는데.
18리라에 양과 질도 돔스트레블러만 못 했다. 이런... 차라리 다른 걸 시킬까 하는 후회도.
돔스가 아침이 정말 잘 나왔구나. 무조건 아침은 숙소에서 챙겨 먹어야지 하는 깨달음을 줬다.

 

이게 약 만 원정도 한다. 숙소에서 나오는 조식은 무조건 챙겨먹어야 겠다. 생각한 계기

 

뭐 딱히 할 건 없어. 걸었다. 술탄마흐메트 광장을 가서 내가 어디서 무얼 잘 못했는지 복기하는 심정으로 동선을 익혓다.
박물관을 기준으로 왼편으로 갔어야 했는데. 오른쪽으로 들어간 게 실수였다. 젠장. 어쨌뜬 이런 시행착오가 있어야...
기억에도 오래 남고... 나중에는 좋겟지...ㅋㅋㅋ 그리고 나서도 할 것은 없어 트렘을 구경하고자 술탄마흐메트 역으로 갔따.

멀리서 본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미)
아침에는 푸른 빛을, 오후에는 짙은 회색을 반사시키 관광객들의 관심을 흡수한다.
이른 새벽과 저녁에는 알 수 없는 위엄으로 자연스럽게 경건해진다.


 

지상철이라고 해야하나? 옛날 야인시대 보면 나왔던 그런 느낌이다.
저거였구나. 하며. 교통카드를 사려고 어디서 파는지 물색했다.
우리나라 생각하며, 정류장 근처 매표소면 다 팔겠지 했는데, 아니다. 몇 곳을 돌며 허탕치다.
관광센터 가서 어디서 트레픽 카드 살 수 있냐 물엇더니 손가락으로 까딱하며 뉴스페이퍼 샵 이런다.
흠. 공무원이라 그런가 별로 안 친절한 것 같았다. 짜식. 뭐 한 200미터 가니깐, 신문 가판대가 있어
30리라를 건네며 카드를 건네 받앗다. 7리라는 보증금, 나머지 23리라가 실 충전 금액

 

이스탄불 여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트렘.

 

딸기 파이? 빵이 참 많은 터키. 우리나라처럼 대형 빵집은 없지만, 거리에서 쉽게 요런 것들을 볼 수 있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1. 12:48

 

사진을 찍다 보니 레트투어도 끝났다. 숙소에 도착해 현아와 통화를 했다.
그녀는 선배 언니네서 치맥중이라 했다. 멀리 있어도 이렇게 연락 되는 걸 보면, 참 세상이 좋다.

숙소 값 54리라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저녁 먹으러 갔다. 100리라 이하는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된단다.
다음 날 까지 아침 못 먹을 생각에 많이 먹어야지 생각했다.
가이드 책에 있는 푸른 익스프레스에서 일반 피데와 닭 요리를 시켰다.
한 20리라였나? 배불러서 다 먹지는 못 하고 피데 3-4조각 남겼다. 가격대비 매우 훌륭했다.

 

Firin Express의 피데와 닭요리 

 

그러고 나니 6시 정도 됐다. 커피를 마실까 생각했으나, 돈 아까워 Suha 버스 정류장에서 있기로 했다.
좀 있으니 어제 함께했던 선우가 배낭을 2개 메고 들어왔다. 페티에로 간다 했다.
가서 뭐 할거냐 물었는데 할 게 없기에 가이드 책의 페티에 일정표를 찍어 줬다.
젊었을 때 아니면 언제 그렇게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의 나머지 일정을 응원하기로 한다.

야간 버스 21번 창가 좌석에 앉았다. 괴뢰메에선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중간중간 사람이 가득 찼다. 덥고, 좁아 불편했다.
휴게소에 2번 정차했따. 한 번은 화장실 다녀오는 나를 터키 사람들이 보고, 니하오. 두이부치라 했는데. 짜증났다.

 

특이하게 야간 버스에는 안내원이 있다. 중간에 음료와 과자를 준다.
출발 시에는 말끔한데, 그도 피곤한지 넥타이가 좀 풀려 있다.
하차 계단 옆(사진 상 남자 왼손 밑)에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거기서 눈을 좀 붙이는 것 같다.

 

경유지에서 사람이 타고 내릴 때 마다, 요걸러 좌석을 체크한다.

 

중간에 화장실을 한 번더 가고 싶었지만, 옆에 앉은 터키 사람이 자고 있어. 깨우기 미안해 참았다.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하다. 7시 정도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나와 유럽인 커플은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술탄 아흐메드 지역에 내렸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1. 12:27

 

숙소로 돌아가니 8시 좀 못 됐다. 9시 레드투어 차량에 맞춰 나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대충 아침을 먹고, 짐을 리셉션에 맡겼다. 이 정도의 서비스는 가뿐하게 해줘 다행이다.
어제 나를 태웠던 차량이 20분 쯤에 와 차량에 탑승했다.
나 혼자임에도 20분에 왔따는 게(원래 차량 탑승 시각은 9~10시 사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앞에 앉았다.
다른 일행을 태우기 위해 괴레메 마을을 돈다. 아침에 탔던 가족 내외가 또 탔다. 한국인이세요? 라며 웃으며 인사한다.
아침에 나를 못 알아 봤던 모양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인 한 명이 탔다. 매우 거구다. 걷는 게 힘들어 보인다.

첫번째 일정은 우치히사르. 멀리서만 보던 거를 가까이 가서 보았다.
어떻게 돌을 파고 들어가 살 생각을 했을까? 신기하다.


그들에게 종교적 신념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배드로가 생각났다.
그는 예수 생존 시, 함께 했떤 기적들을 몸소 체험한 1대 제자다.
성경에 나온 장님이 눈 뜬 것도, 앉은뱅이가 일어선 것도 모두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막상 현실의 죽음이 두려워 예수를 부정했다.
눈 앞의 기적들을 통해, 죽으면 영생에 이른다는 확신이 누구보다 강했어야 할 그다.
그런 그 임에도 예수를 부정한 걸 보면, 사람은 현실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더러.
기독교에 대한 의문이 다시 한 번 드는 대목이다.
대략 사진 찍고, 어제 내가 방문했던 자연사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가는 게 아니였는데. 괜히 돈 아까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혼자서 다녀오길 잘한 것도 있다.
아무래도 이런 패키지 식의 여행은 나 혼자 생각할 것도 볼 것도 제한 돼 있어. 불편하다. 자기 합리화인가? ㅎ
말레이시아 여성 2명을 태우고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말레이시아가 영어권 국가였는지. 영어를 잘 한다.
덕분에 말 통하는 동양인 여성(?) 2명이 나타나자 호주인은 말이 많아 졌다.

입장 전, 한국인 남자 꼬맹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해 일행은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안 나온다. 가이드가 들어갔다. 5분 더 지나서야 아줌마가 한 쪽에 쇼핑백을 들고,
서둘러 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뭐지? 쇼핑 하느라 다른 사람들 시간 뺏는 게 상식적인 행동인가???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 쇼핑백만 안 보였어도 이렇게 어이 없진 않았을 텐데.
전형적인 어글리 코리안 같아서 다른 외국인 일행들 보기 챙피했다.
 
3일 째 되니, 괴레메마을의 풍경이 익숙해졌다. 아름답고 놀아운 지형이긴 하지만 지루하다.
일찌감치 자연사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출구에서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유럽에서 온 할머니, 할아버지 일행이 많았다.
그런거 보면, 우리나라와 유럽의 연금제도를 포함한 노후의 삶이 비교된다.
우리나라 그 연령대의 부모님들은 어떤가? 자식 잘 키워보겠다고 열심히 일만 하시고. 지금은 뭐 남은 것도 없고.

 

 

자연사 박물관의 유럽인들, 유독 높은 연령층이 많다.

 

먼저 와있던 가이드와 얘기를 했다. 일은 얼마나 했으며, 나이는 몇인지. 5년 일했따. 했고 나이는 놀랍게도 82년생이다.
40대라고 해도 믿을 인상인데. 나도 노안이라 생각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ㅋㅋ
나 역시도 3일 만에 다소 지루함을 느꼈는데, 5년 일한 그는 어땠을까? 가이드 하는 사람은 물론 달라지겠지만,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말 하는 게. 지겹지 않을까? 한 번 물어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기다리니 일행들이 속속 도착한다.
한국인 일행들이 오기에 아이들 2명, 연로하신 어머님 데리고 여행 다니시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물었다.
나도 조카들 때문에 그 일이 힘들 다는 것은 조금 알기에 던진 말이었다.
자신의 수고로움 알아주는 사람 만난 게 기뻤던지 화답이 길다.
공통의 화제를 찾은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시작했고,
다음 장소로 이동 전 화장실을 간 나는 아까했던 오해가 풀렸다.
사람은 많은데 화장실이 그 곳 하나 밖에 없어 줄이 엄청 길었다.
애가 줄을 기다리는 동안 아줌마가 쇼핑을 한 것 같다.
우리의 대화는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혼자 여행하는 남자 청년의 일신상에 관한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결혼하기 전에 여기저기 둘러본다 하였고, 여자친구는 한국에 있다 했다.
자연사박물에관에서 아이들과 사진 찍다 여자애가 인형을 뒤로 떨어뜨려 내가 주워 준게 고마웠는지 음료수를 사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그 후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이미 익숙한 지형이라 사실 그게 그거였다.
누누히 생각하지만, 역치를 넘지 못하는 자극은 무위로 끝난다.

 

 가족바위

 데브렌트 계곡, 낙타바위

 파샤바 계곡

차우신 마을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1. 11:28

 

벌룬 투어가 예약된 날이다.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5시에 나갔다.
아침 해를 봐야하기 때문에 일정이 빠르다. 차는 5시 10분에 왔다.
나 말고도 히잡을 두른 외국인 여성 한 명과 한국인 가족 4명이 탔다.
차는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가더니, 나에게 사진을 찍어 주겠다던 아저씨가 있던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놀란 와중에 어제 그 아저씨가 있나 찾아봤다. 다행이 없었다.

벌룬 투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그 식당 안에서 음료와 빵으로 요기중이다.
나도 차이와 맛 없는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시간이 되니, 예약된 벌룬 별로 사람을 호명한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짧은 거리를 이동한다. 내 앞에 한국인 여성이 있다. 이름이 현정은인가, 현재은이다. 나이는 22살.
오기 전 기사를 벌룬 투어 기사를 봤는데, 13년 초에 터키 볼룬 사고로 한국인이 죽었다는 것이다.
어제 만난 김 모군이 볼룬끼리 부딪혀 추락했다고 상세 설명해줬다.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인지, 볼룬 출발점이 각각 거리를 두고 멀다.

 

 빵 먹으며, 대기중인 사람들. 의도한 건 아닌데, 이날 함께 할 한국인 가족이 센터에.

 

 

내가 예약한 것은 skyway. 전날 김모군이 VIP가 사람이 별로 없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기에
잠깐 고민했엇지만, 5만원의 추가비용과 시각이 촉박해. 변경하지 않았다.
대략 24명 정도 탔다. 우리쪽에 탄 인도인과 한국 여자 빼고는 다 브라질리언이다.
그 중 몇 명과는 통성명을 했다.

불을 쉭쉭 떼더니. 열기구가 붕 뜨고, 괴레메 마을 전역이 보인다.
화산 활동에 의해 생성된 지형. 도무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그릴 수 없는 모습.
열 기구는 생각보다 빠르다. 내가 GPS가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조종사가 9,000미터 상공이라고 한다.
산악인들의 산행기를 보면, 그 정도 높이에선 호흡을 잘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멀쩡하게 호흡하는 걸 보면
그 정도는 아니지 싶다. 아마 m가 아닌 피트를 내가 잘 못 들은 모양이다. 피트로 환산하면 대략 2,700미터

 

열기구에서 바라본 괴레메 마을, 카파도키아 전경

 

열기구들이 하나 둘 지상에서 멀어지자, 풍선처럼 작아졌다. 땅 위에서 많이 멀어졌을 때 그렇게 멋있지 않고,
열 기구가 지상과 같이 시야에 잡힐 때 멋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지표면이라는 대조군이 생겨
벌룬의 부력과 중력 저항도가 느껴지고, 가까이 있어서 실 크기대로 잘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동전만하지만,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러니 20-30명이 뜨겠지.

 

일출을 보고 슬슬 내려온다. 하강할 때는 다소 지루하다. 착륙할 것처럼 몇번 모션을 취했다. 다시 좀 올랐다.를 반복한다.
신기한 것은 조종사가 착륙 지점(벌룬을 싣고 갈 트럭)에 정확히 벌룬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냥 땅에 내린 뒤
일하는 사람들이 어련히 다시 올리겠지? 생각했던 탑승객들이 반전에 다들 박수를 친다.
무사귀환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있으리라.

 

잘 생긴 운전사, 무전으로 현재 위치 및 상황에 대한 보고 중

 

그 중 덩치가 산만한, 그렇지만 매우 해맑은 청년이 손님을 어깨로 들어 내려준다.
나와 재은 역시 차례로 내려 주더니 인증서와 함께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자처했다. 우리를 커플로 인식한 모양이다.
나름 뒷풀이 행사다. 성공적으로 내려왔다는 수료증을 주고,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하는 자리다.

나와 그녀와 이 얘기, 저 얘기를 이어갔다. 이스탄불에 이모부가 주재원으로 계셔 이모댁에 놀러 왔었고,
조금 더 돌다가 이스탄불로 돌아가 예정이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고, 있다기에,
그럼 이렇게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거 이해해주냐? 물었더니, 그냥 웃었다. 좋은 나이다.

나를 내려준 터키 청년과도 간단히 얘기했다. 그는 190m 혹은 그 이상 돼 보였고, 떡대도 강호동급이였다.
딱 보기에도 힘이 장사라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굉장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데, 항시 웃고 있어 보기 좋다.
나이느 나보다 많이 어릴 것 같다. 웃고 있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웃음을 지속적으로 갖게 하는 줄은 모르겟지만, 그보다 연 수입이 많을 나보다 행복해 보였다.

* 벌룬 투어는 탑습인원에 따라, 가격이 좀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25명 정도 타는 게 100유로 안팎이고(이동 불가)
  위에서 언급한 VIP 이런거는 7명 정도 타고, 비용은 5만원 정도 추가, 사람이 적어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 가능해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 촬영 가능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1. 01:04

 

그리고 나서 으흘라라의 3km 계곡길을 걸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호젓함이 느껴진다.
가이드가 어떠냐고 묻기에 매우 평화롭다 했다. 중간에 점심을 먹었다. 치킨, 소, 생선 케밥을 시켰다.
앞테이블에 중국 여자5명이 와 그들에 대해 얘기했다.

 

 

 

 

으흘라라 계곡 트래킹 길

 

그리고 스타워즈 촬영장소로 갔다.
신기하게 생긴 모양의 지형들이 눈에 띄었다.

버섯 모양의 특이한 터키 지형의 비밀은 화산 활동과 관련이 있다. 

 

 

스타워즈 촬영장소(상,중)와 피죤 밸리(하)

 

"900만 년 전부터 300만 년 전까지 현대 터키 땅에서는 엄청난 화산폭발일 계속 일어났다.
이때 화산재가 수백미터에 걸쳐 대지를 덮었고,강한 폭발에 땅 위로 터져 나온 용암 덩어리들이 그 위를 덮었다.
그 뒤 빗물은 부드러운 화산재들을 씻어내며 땅을 조금씩 침식해 들어갔다.
그래서 부드러운 부분은 한없이 패여 계곡이 되고,
용암이 조금이라도 덮은 곳은 빗물이 비껴가면서 산등성이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용암을 머리에 인 버섯 모양의 기둥들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화산재로 이뤄진 바위는 아주 부드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손쉽게 동굴을 파서 집이나 교회를 지었다."
<터키, 1만여의 시간 여행> 참조, 유재원

사람이 자주쓰는 모양은 기껏해야 사각형, 삼각형, 원이다. 이것도 다 자연으로부터 빌린 형상이다.
자연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크기의 조형물을 여기저기 배치해 보는 사람을 압도시킨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무덤 쪽으로 갔다.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길. 이란 문구가 생각날 정도로 길은 조용했으며 햇빛을 받아 따뜻해 보였다.
그렇게 공식 일정은 끝났다.


 
Selime Sultan Tomb

나와 선우는 카톡 연락처를 교환한 후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괴르메에서 유명한 항아리 케밥을 먹었다.
사실 그렇게 맛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또 왔으니깐 먹어보자는 심사였다. 밥 먹으며 그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항아리 케밥, 윙 요리, 메제(Meze, 좌측하단)

 

그리고 날이 많이 어두워지자, 나는 삼각대를 들고 괴레메 마을 야경을 담으러 다시 어제 갔던 선셋포인트에 올랐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야경이다.

 

괴레메 마을의 야경, 저멀리 우치히사르 성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0. 23:58

 

둘째날. 잠을 설쳤다. 아무리 내가 잠이 잘 드는사람이라도 시차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씻고. 식당에서 향후 계획을 세우며 밥을 먹었다. 그때가 아침 7시20분쯤.
다섯개의 잼(꿀, 딸기, 초코, 버터, 요쿠르트), 햄, 따끈한 삶은 계란, 귤, 올리브, 오이,
토마토, 짠 껌은색, 무화과, 망고 말린거와 충분한 빵, 우유, 차이티를 제공한다. 아침치고 적당한 양이다.

 

식당에서 자고 있는 개 한 마리. 역시 개팔자가 상팔자다.

 

일요일 아침인데. 숙소 앞에 일하고 있는 아저씨가 계셨다.
일요일이 기독교의 안식일이니 다른 종교를 믿는다면 굳이 안 쉬어도 될 법하다.
사람들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여유가 생긴걸까?
여기서 나 역시 지극히 자본주의적 사고에 찌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돈이 많아야(생계로부터 매우 자유로워야) 여유(정서적 안정)가 생기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나는 그게 종교의 힘이라 생각한다. 알라신은 그들로 하여금 물신(자본주의 폐해)을 배척하고, 성실하며, 겸손하게 살라한다.
좋은 행동은 좋은 생각에서 발현 되기에 건강한 철학의 정립이 왜 중요한지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더 나아가 효율과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 하는 서양주의식 문화보다
규율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엄격히 통제하지만, 사람들 내면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슬람 문화권가
어떤 면에서는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언론에 이슬람 문화권의 낮은 여성 인권을 고발하는 기사가 주지하듯 분명 어두운 면도 있다.
인간애라는 보편적 관점에서 명예살인 등의 그러한 행위는 분명 잘못됐다.
그래도, 엊그제까지만 해도 일상에서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 받는 나를 떠올리면,
이런 문화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린투어 버스를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투어 차량들이 지나간다. 제법 경쟁이 있나보다.
차량에 오르니 이미 세명의 한국인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행을 다 태웠을 때 나, 선우, 28살 직딩 코리안, 허니문 코리안,
취준생 여자 2명 코리안, 아제르바이제 여자 1명, 인도 부부 2명 이렇게 인원이 구성됐다.
오토갈 근처에서 버스에 오른 선우는 88년 생으로, 한국인이 많네. 이러며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내 옆에 앉더니 이 얘기, 저 얘기한다.
굳이 한국인들과 말섞기 싫어서 조용히 있었지만 그런 눈치 보지 않고 계속 말 한다.
오랜 만에 한국 사람 만나 대화 하는 게 너무 신나서 그러니 이해해달란다.
몇 달째 외국여행중이고. 각국에서 겪었던 이벤트가 주소재다.
호주에서 워킹하며 2천 만원 가량 모아 세계 각지 여행중이란다.
이렇게 열정적인 친구를 보며. 나는 대학교 때 뭐했나 싶기도 한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날 시간을 두며 얘기를 나누니 든 생각인데.
나는 그의 그런 여행이 세계각지를 돌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글을 남긴 카잔챠키스 떠올리게 해 부러웠었다.
하지만 그는 카잔차키스의 그런 여행을 하는 게 아니였다.
해당 여행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관광객들처럼 유명한 곳 다니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범인들의 여행이다.
그래도 나는 하지 못 했던 그의 도전정신과 실행력은 분명 대단하다.

오늘 첫번 째 일정은 데린쿠유 지하도시다. 영어 가이드의 설명은 한 30프로 정도 이해된다.
영어를 잘 해서라기 보다, 오기 전 이 곳에 대한 사전지식을 조금 쌓았기 때문이리라.
어떻게 이 좁은 곳에 땅을 파고 살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믿음은 현실의 편안함을 포기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일까?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한 책에는 동서교회 통합 마찰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비잔틴 국가의 사람들은 현실의 생애는 영생을 위한 중간단계로 믿었다.
그렇기에 불순함이 개입되는 걸 원치 않았고. 내생을 위해 현실의 수고로움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다.
그들은 진정 후회하지 않았을까?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총 11층으로 이뤄져 있고, 기원전 7~8세기 부터 사람이 살았다.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교도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고,
그 뒤 페르시아와이슬람의 침입이 잦던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데린쿠유는 크게 확장됐으며
1839년에는 오스만터키 제국에 반기를 든 이집트의 알리 파샤가 이 지역을 침공했을 때, 주민들이 이곳으로 피신했다.
교회와 주거를 위한 방, 외양간, 부엌, 기름 짜는 작업장, 식품저장고, 포도주저장고 등 온갖 편의 시설이 있었다."
<터키, 1만여의 시간 여행>, 유재원

*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 패키지 상품의 하나로, 괴르메 마을에서 먼 곳에 떨어진 명소를 둘러보는 코스다.
  지하도시, 으흘라라 계곡 등을 버스로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둘러본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0. 18:08

 

나를 픽업하러 온 터키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출국 전 터키 소재 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업체를 이용해

한국인 운전사(여행사 사장님)가 와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내 생각이 순진했다.
나 말고도 다른 나라 사람 몇몇을 태우고 최종 목적지인 괴르메로 향했다
.
차타고 30분 정도는 들어갔다. 각 일행을
숙소 앞에 떨궈주고. 차는 갔다.
내가 머문 숙소는 The Dorm Cave라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곳이다
.
간단히 체크인 하고 씻었다. 2일간 못 씻었더니. 찝찝했다. 뜨거운 물로 여독을 털어냈다
.
도미토리라 공동세면, 화장실이다. 그럼에도 조식 포함 2일에 3만원이니 경제적인 가격이다
.


 

 

 

                                                                                                                       숙소주변 풍경

 첫째 날은 뭐 특별히 계획 세운 게 없어 시골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자연사박물관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보고 그리로 이동했다
.
낯선 시골을 혼자 걸으니, 감상에 젖었는지 여행이란 발에 그곳의 지형을 담는 것이라 생각했다
.

 

 

                                                                                                  자연사 박물관 가는 길 

 

자연사 박물관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이상한 지형에 사람이 산 흔적과
교회의 모습을 보존한 유적으로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관람료는 23리라.
우리나라 돈으로, 13,000원 정도. 근데 다 보고나니. 그 정도 가치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
그리고 유홍준 교수님이 예전에 TV에서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
우리나라는 문화재관람료가 서양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다
.
나는 터키의 관람료가 우리 나라 문화재 관람료 대비 비싸다고 생각한 것이다
.

근데 우리나란 왜 저렴한 걸까? 대한민국보다 경제규모가 적은 나라의 관람료도 비싼데
.
아무래도 입안자들이 처음 관람료를 책정했을 때, 낮은 인당 소득 규모를 감안했을 테고
,
초기 가격이 지속되는 기간만큼, 문화재 관람료는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 돼
,
문화재 보수, 유지비가 증가해도 국민들의 가격 저항에 부딪혔던 것은 아닐까 싶다
.
즉 사람들이 문화재를 소비재 아닌,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공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무튼, 대략보고 왔던 길을 통해 되돌아 갔다
.
그런데 중간에 식당주인처럼 생긴 분이 풍경이 좋다며 사진 찍어주겠다는 호의를 베풀려 했다
.
오기 전 관광객들을 향한 현지인들의 호의를 조심하라는 말이 생각나 호의를 거절했다
.
그 역시 기분이 썩 좋지 않은지 나에게 영어를 못 알아듣냐며 살짝 짜증을 냈다
.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건 냉정히 나의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니다
.
그렇게 국가 이미지를 격하시킨 많은 호객꾼들 때문 아니겠는가
?
그리고 그건 그런 식당 주인 아저씨를 포함한 터키 관광객 종사자들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 본다.

가이드 책을 보니. 선셋 포인트라는 곳이 있어. 마침 시간도 해질 녘이다
.
오르막 길을 오르니 괴레메 마을 전경이 다 보였다. 정말 조그만 마을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
나 말고도 다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올라와 있다
.
일본인 부부와 외국인 젊은 층들이 웃고 떠드는 게 보였다
.
아무래도 혼자 있기에 그들의 모습이 더 잘 들어왔을 것이다
.

 

                                                                                                  괴레메 마을 언덕에서

그렇게 혼자 있는데 어떤 술 취한 외국인이 내게 다가와 한국인이냐며 묻는다.
나 역시 사진 찍어줄 마땅한 사람을 찾는 중이라 그의 접근이 반가웠다
.
Dark
라고 쓰여진 500ml 맥주 캔을 들고, 얼굴이 좀 붉어진 게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사진을 못 찍는 건 아닐 테니깐.

한국 서울, 부산에서 왔냐며 물었다. 그는 2명의 한국 친구가 있다고 했다.
아마 그 둘이 각각 서울과 부산 출신의 관광객이 아니었을까
?
나보고 몇 살이냐 물었다. 30살이라 했다
.
자기가 수염 때문에 나보다 2살 어리지만 늙어 보인다고 했다
.
머리 숱 적은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걸 본인도 인정하나 보다
.
근데 내가 봤을 때 수염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
노화의 징표라 할 수 있는 굵은 주름들이 얼굴 여기저기에 많아

전반적으로 강한 인상을 형성하며 연륜 있어 보이게 끔 한다..

그리고 짧은 영어로 대화를 지속했다. 결혼 여부, 왜 이스탄불보다 카파도키아를 먼저 왔는지
.
나는 스케쥴 짜는데 있어 더 효율적이라 했는데. 그는 그걸 이해 못했는지
.
자꾸 두세 번 물어봤다. 결국엔 카파도키아엔 왜 왔는지 물어보면서
.
친구의 좋다는 추천으로 내가 먼저 방문한 이유를 스스로 받아드렸다
.
이번엔 내가 물었다. 주변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있기도 했고
.
예전에 외국인들이 한중일 각각의 사람들을 구분 못 한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을 떠올려
.
각국의 사람들을 구분할 줄 아는지. 그는 놀랍게도 할 줄 안다. 했다
.
중국인들은 시끄럽고. 한국인들은 샤이하단다. 짧은 설명이지만 명확한 것 같다
.

나에게 여태가지 얼마나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고 물었다
.
나는 5-6국이라고 했다. 그 중 하나가 태국인데. 나에게 무슨 이유로 거길 갔냐 물었다
.
? 나는 섹슈얼 트레블은 아니라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은퇴한 이들이 그곳을 찾는다 했다
.
나 역시 태국에서 그러한 커플을 많이 봤으며, 한국에선 그런 행위가 금기라고 말했다
.
그러며 걷고 있는데. 여자 3명이 나에게 사진을 좀 찍어 달란다. 오브 코스라 간단히 말한 뒤

아이폰을 받아다. 그가 다가와 어서 왔냐고 물었다. 아메리카, 체코, 홀랜드.
그 중 네덜런드에서 온 여자가 제일 예뻤다
.
그 중 리더격인 아메리카 여자가 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
여기가 가장 좋은 선셋 포인트냐. 나는 뭐 그녀들에게 수작 걸 마음이(혹은 능력) 없어서

좀 기다리다 내려왔다. 그리고선 괴레메 마을 전경 사진을 찍었다.
날이 완전 어둑어둑 해진 것은 아니었다. 어둠이 착 내리면 다시 오기로 생각하던 찰라

그가 내려오며, 왜 나보고 먼저 갔냐고 말을 건다. 헤이 프렌드~ ...
한국에선 여자들에게 작업 거는 동안 빠져 주는 게 예의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
짧은 영어라... 그렇게 상게하게 전달할 자신이 없어 걍. 쏘리!했다
.
그리고 악수로 간단하게 인사한 뒤 나는 그는 각자의 길을 갔다
.

그는 이 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을 만나 대화하며 얻은 지식을 본인의 것으로 저장한 뒤

다른 관광객들에게 포워딩하며 나름의 만족을 느낄 것 같았다.
그도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어할까
?
그런 욕구를 대리만족하기 위해 혼자 관광객이 많은 곳에 올라와 말을 걸며,, 돌아다닌 건 아닐까
?
나에게 짧은 영어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그에게 감사하다
.

그리고 중간에 앉아 밥 먹을 장소를 알아봤다
.
여기저기 많았지만, 숙소 근처에 Top Deck 레스토랑을 찾았다
.
가깝기도 할뿐더러,,, 요리사 출신이라 맛이 좋다는 평에 고민하지 않았다
.
좌식 테이블 2-3개 정도와 식탁 5-6개 정도 있는 소박한 식당이다
.
나는 비프 케밥을 시켯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빵과 샐러드가 나왔다
.
터키는 기본적으로 밥 먹기 전에 빵을 준다. 우리나라 파스타집에 가면 나오는 것처럼
,,,
소고기 케밥이 20리라. 우리나라 돈으로 만이천원 하니깐, 싼 가격은 아니다
.
근데. 엄청 향도 근사하고, 맛도 있었다. 2만원은 줘도 될 듯
.
계산을 하면서, 한국에서 이 식당이 매우 유명하다고 하니깐, 좋아하더라
.


그리고 소화를 시키고 모레 버스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
괴뢰메는 작은 마을이라,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데 10분이면 된다
.

제법 많은 한국인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유명 관광지이니깐 그렇겠지 생각해도
,
왜 하필이면 한국인들이 다른 인종들보다 많을까?란 의문에는 답이 애매하다
.
인구 비율적으로, 당연히 작을 수 밖에 없는데도. ... 유난인 건지 뭔지. 신기하다
.

야간 버스 일정과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와 맥주 2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났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 30. 17:48

 

이스탄불 행 터키항공. 우리나라 사람은 별로 없다. 밤 비행기라 그런지 기내식 주고 일찍 소등한다.
불을 끈다고 쉽게 잠이 오진 않는다. 혼자 하는 해외 여행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
창가자리라 자연스럽게 시선을 밤 하늘에 두었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별이 멀긴 했지만 위가 아닌 옆 쪽에서 반짝인다는 점이다
.
전에 없던 경험이다. 기존에는 소등할 만큼 긴 비행이 없었으며
,
있다 해도 창가가 아니라 밖을 볼 수 없었다. 매우 신기하며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
비행기 핸들을 좌로 틀면 이대로 저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환상이 큰가? ㅎㅎ

무튼 잠을 청하긴 했으나, 불편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어느덧 이스탄불에 이르렀고, 창 밖을 보니 주황색 불들이 숲을 이뤄

어두운 도시를 밝게 빛낸다. 피곤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들어온다.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 후 국내선 환승장을 찾아갔다.
국제선 이르기 전에 있는데, 사람들 따라 가는 길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 엄한 데 줄 섰다.
Domestic Transit
표지판을 놓치면 안 된다.


버스로 카파도키아로 갈 수 있지만, 3만원에 10시간 걸리는 점에 비해

국내선이 7만원에 1시간 걸리기에 나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 장시간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은 경험 일 것 같아서
이스탄불로 돌아올 때는 야간 버스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시간이 좀 남아 하나은행에서 만든 체크카드로 돈을 찾으려 했다
.
근데 핀코드 6자리를 몰라 돈을 못 찾았다. 아무거나 누르다. 결국 정지당했다. 젠장

나중에 알고 보니, 기존 비밀번호 뒷자리에 00을 입력해야 한다고 한다.
식은 땀이 났는데, 다행스럽게 가져갔던 다른 체크카드에서 인출이 가능했다
.

10분을 걸어 국내선 입국 하는 곳에 다다랐다. 여권을 보여주며, 검색대를 지나는데

검사원이 가방에 뭐가 있다며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손으로 다른 방향을 지시하는데
터키말이라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5분을 나는 안 되는 영어로 그는 터키어로
서로 뭐라뭐라 말하는데 진심 멘붕 왔다. 그러다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샀던 양주가 배낭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류는 반입금지 아니던가
.
뭔가 희망을 발견하고 배낭을 수화물로 부쳤다. 그리고 나서 다시 검색대를 지나니 통과
!
이렇게 낯선 여행지에서는 모든 게 서툴다. 멀쩡하던 사람도 바보가 된다
.
그래도 이런 게 경험이고, 지나고 나면 추억 거리 아니겠는가
.

 

                                                             아타튀르크 공항 국내선 입국 수속대 근처

네브쉐이르 행 비행기까지 시간이 넉넉해 Priority Pass 라운지를 갔다.
간단하게 요기하고, 가져간 책을 좀 봤다. 와이파이를 이용해 현아에게 현황 보고했다
.
그리고 이번 터키 여행을 가능케 해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

 

 

                                                                                               차이티, 올리브, 치즈, 도넛 & 라운지 전경

기내에서 좀 잤다고 하나, 시차로 피곤했다. 난생 처음 겪는 7시간의 시차. 비에 젖은 신발처럼 꿉꿉하다.
몸이 있는 곳은 새벽인데, 생체시간은 점심이다
. 사람이 시차 1시간을 적응하는데 하루 정도 소요 된다고 한다.
9
일 일정이니깐, 나는 적응하기 바쁘게 돌아가야 한다. . 뭔가 억울하다
.

3
시간을 기다려 네브쉐이르 행 비행기를 탔다. 1시간 비행인데. 조식을 준다
.
계란 오믈릿 뭐 그런 비슷한 거였다. 비행기에서 할 게 없어 또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
지형이 특이하다. 색은 물론이며 지류가 만들어낸 불규칙 적인 땅 모양
.
다채로운 색깔(회색, 녹색, 붉은색), 질서 없는 높낮이 등은 경이롭다
.

 

 


네브쉐이르 공항에서 수속 할 때도 시간이 지체됐다
.
내 캐리어만 안 나왔다. 남들 다 떠나고 나랑, 중국인 여자 2명만 남았다
.
분실되거나 파손됐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
이런 경우에 나란 사람이 그런 건지 아니면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지
,
대게 그런 상황에 처하면 불길한 혹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한다
.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더욱 크게 상상함으로써 더 큰 불안에 몰아 넣는다
.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인간의 나약함, 부정적인 사람의 특성이라기 보다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 때 최악의 경우를 상상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하고자 하는
인간의 적응 본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뭐 어찌됐든, 불안에 떠는 우리에게 공항 직원이 오더니, 이름 확인 후 오라고 한다
.
옆 구획으로 가더니, 뭐라뭐라 설명한다. 정확하게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략 캐리어속 랩탑 피시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캐리어를 열어 문제 없음을 확인 시켜주고
드디어 기뿐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11. 13. 04:36

터기 여행중이다. 외국인들이 내게 말을 건다.

꼬질꼬질 할 때는 니하오?

씻고 나왔을 때는 곤니찌와!

니하오란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중국인이라니...

 

그들에게 동북아시아란 중국과 일본뿐인가 보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