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시 고려사항은 이동수단, 일정 2가지였다.
장롱면허인 나와 J가 과연 차 렌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과
이번으로 제주도가 4번째인 나와 달리 처음인 J와 모두 만족할 만한 일정 조율이 가능한지…
그래서 처음에는 스쿠터를 생각했다.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운전이 가능한 점과 오픈카를 타늣 듯한 시원함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한 여름 아스팔트 열기에 노출 돼 덥다는 점과
혹시 사고 발생 시, 다칠 확률이 높고 짐 실을 공간이 적어 불편한 단점이 너무나 명확했다.
스쿠터와 차를 두고 출발 당일 오후 3시까지 결정을 못 했다.
그러다, 제주도는 차가 없어 운전하기 쉽다는 주의의 말과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방어운전 실력을 믿고 시내만 어떻게 벗어나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렌트를 강행했다.
일정은 순전히 내 위주로 짰다.
첫째날 추사유배지 / 모슬포항 / 중문해수욕장
둘째날 서귀포 / 섭지코지 / 성산일출봉 / 우도(해수욕장)
그러나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7권에서 말한
한라산 영주의 경치를 못 본게 아쉬워서 J와 다시 얘기했다.
J는 전형적인 술, 담배에 쩔은 저질체력이라 땀 많고, 힘든 등산 코스를 싫어할게 뻔했다.
그래서 제주도 볼거리는 크게 한라산과 바다 2가지다.
네가 제주도에 왔으면 한라산은 보고 가야하지 않겠냐하며,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돈내코, 어리목, 관음사, 성판악 등 다른 코스에 비해)
경치는 정말 짱인게 있다하여, 그를 설득했다.
다행히도, 일정에 대한 전권을 나에게 위임한 상태라서
아쉽지만 추사유배지는 다음으로 하고, 영실을 택했다.
15일 아침에 일어나 대충 씻고,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08년도 1월 면허를 따고, 처음 잡는 핸들이다.
부담감으로 긴장했지만, J 앞이라 태연한 척 했다.
내가 당황하면 그는 공포를 느낄까봐? 그런 배려였다.
여행 전, J에게 너는 집에 차도 있는 애가 아버지에게 연수 안 받아 봤냐고 물었는데
3-4번 받고 나는 운전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확신했단다.
서로 장롱인데, 그래도 운동 신경이 조금이나마 좋은 내가 독박썼다. 젠장.
렌터카를 인수 받고, 조심스레 시동을 걸었다.
출발하려고 기아를 D로 내렸는데. 이게 안 움직인다.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힘으로 할 게 아닌 것 같아서
뭐 이것저것 해보다가,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내리니 그제서야 내려갔다.
그리고 뒷 얘기지만 하루가 지나서야,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나에게 맞게 수정했다.
나와 J의 운전 실력이 이렇다.
내비로 영실을 지정하고, 도로로 나왔다. 밀림에 나온 사슴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무서웠다.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데, 끼어들 여유가 없어 일직선으로만 갔다.
우스갯소리로 서울에서 렌트했으면, 일직선으로만 가. 부산까지 갈 기세다. 서로 웃었다.
그러다 잘못된 길을 되 돌아 오려 유턴을 했는데, 뒷차와 사고 날 뻔했다. ㅋㅋ
처음부터 엄청 경적(비난) 세례를 받았다. 그래도 아닌 게 아니라, 시내를 벗어나니 차가 확실히 줄었다.
영실 휴게소에 이르렀다.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산을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사람 많은 산은 정말 시끄럽고
왠지 희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정감이 가질 않는다.
빠르게 가면 왕복 3시간 코스란 말에 생수 한 통과 스틱을 서로 하나씩 나눠 지고 올랐다.
전일 한라산 등정 여독이 있어, 온 몸 여기저기 쑤셨지만
그래서 영실보다 더 한 코스를 올랐다는 마음 때문인지 한결 가벼웠다.
J는 5분만에 숨을 헐떡였다. 그래도 죽지는 않겠지.
이러한 충격요법이 그에게 도움 되길 바라며, 무심한 척 앞길을 텄다.
영실 역시 초반에는 숲으로 시계가 막혀 답답하다.
그래도 한 40분 정도만 오르면 병풍능선이 나오면서 전망이 트인다.
그때부터 유홍준 교수가 말한 영실의 아름다움이 도드라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앗아간다. 경치를 감상하며, 얼음물을 들이켰는데
영실의 냉기가 기도를 타고 넘어와 오한을 느꼈다.
오백나한 바위를 뒤로하고, 정산능선에 올랐다.
평평한 길에, 탐방로로 주위 풀들이 우거져, 다리와 눈이 호강이다.
영실 휴게소 막바지 근처에 노루샘이라는 약수가 있는데.
이건 가뭄의 영향인지 물이 한 방울, 두 세 방울씩 나온다.
그래도 한국인 특유의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 몰통을 반 정도 채웠다.
물론 나 아닌 J가.
영실 휴게소에서 사발면을 먹었다. 이 더운 여름에 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고생 뒤에 먹는 음식이라 맛은 좋다.
J가 국물이 싱거운 것 같다고 하여, 사람들이 국물 남길 것을 우려하여 물을 정상 대비 2/3정도만 넣고
그에 따라 스프도 조금만 넣어서 그런거다라고, 인터넷에서 본 것을 말해줬다.
대략 정리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성판악에서도 느낀 바지만, 시계가 막혔을 때 답답함을 느낀 것은
그 동안 내가 산행 시 경치를 주로 봤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막상 나무에 내가 관심이 많았다면,
숲속 길을 정말 신기해 하지 않았을까? 한라산 저지대에만 약 70여종의 나무가 있다는데
까막눈인 나는 그 나무가 그 나무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거다.
다음 목적지인 예래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J가 물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 어제 그 정도냐고.
나도 뭐 많이 묵어본 건 아니지만, 그 정도면 시설 기준으로 A급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내 예래에서 그러한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회관을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예래는
딱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낙후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잖이 실망한 J가 담배를 피는 동안 사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최근에 해파리가 많다는 기사를 봤는데 중문은 어떤지 물었다.
해파리는 제주도 북쪽 해수욕장에만 많고
중문에는 없다며 안심하라 했다. 그리고 늦으면 입수 통제를 하니 빨리 가라 재촉했다.
요새 제주도에는 중국인들이 많다는 택시기사님의 말씀처럼
중문해수욕장에도 중국인들이 한국사람보다 많았다.
식당에서 담배 피는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눈 쌀을 찌푸렸다.
오랜만의 바다 수영이다. 대학생 때 왔던 애월해수욕장(아마…???)과
달리 바다가 검푸른색이었다. 딱 보기에도 깊어 보였다.
파도도 강해 사람들이 해변가 근처에만 옹기종기 모여있다.
스노쿨링을 생각하고 챙긴 물안경으로 바다 속을 봤는데,
하나도 안 보였다. 내 팔도 안 보일 정도로, 바다는 혼탁했다.
그래도 물놀이는 물놀이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바다로 퐁당 뛰어 들어갔다.
수영을 좀 배웠다고 으쓱해선지 제법 깊이까지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단 3명 있었다. 맨 몸으로 온 사람들만.
튜브 탄 사람들은 무서워서 여기까지 못 오는 듯싶다.
바다에서는 몸 띄우기가 싶다. 힘들이지 않고 평영으로 가볍게
쓱쓱 갔는데 가드레인 근처였다. 제법 뿌듯했다. 여태까지 수영 배우느라 고생한 게 보람 있었다.
그렇게 대략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사장님과 주변 맛집에 대해 얘기했다.
친절하게 사장님이 아주 맛있는 돼지고기 집을 추천해주셨다.
구중문에 위치한 ‘마스로’란 돼지고기 집인데
모듬 고기 소(小)자 600g에 3만원이었다. 1인분에 만원이니 비싼 편은 아니다.
제주도산 돼지라 맛은 당연 보장! 그리고 참치샐러드, 햄감자, 콩나무 김치, 파김치 등
6-7종의 ‘스끼다시’가 나왔는데 어이없게도 다 맛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시설에 대한 불만족이 싹 씻기는 순간이었다.
배 부르게 먹고, 나오며 메뉴판을 봤는데 원산지 표기가 서울과 좀 달랐다.
서울은 대게 국내산 혹은 칠레산 이렇게 표시 돼 있는데 반해
제주도는 ‘제주산’이라고 명확하게 찝어 얘기한다.
제주산에 대한 애착 및 자부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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