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3. 8. 20. 00:40

 

제주도 여행 시 고려사항은 이동수단, 일정 2가지였다.
장롱면허인 나와 J가 과연 차 렌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과
이번으로 제주도가 4번째인 나와 달리 처음인 J와 모두 만족할 만한 일정 조율이 가능한지…

그래서 처음에는 스쿠터를 생각했다.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운전이 가능한 점과 오픈카를 타늣 듯한 시원함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한 여름 아스팔트 열기에 노출 돼 덥다는 점과
혹시 사고 발생 시, 다칠 확률이 높고 짐 실을 공간이 적어 불편한 단점이 너무나 명확했다.
스쿠터와 차를 두고 출발 당일 오후 3시까지 결정을 못 했다.
그러다, 제주도는 차가 없어 운전하기 쉽다는 주의의 말과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방어운전 실력을 믿고  시내만 어떻게 벗어나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렌트를 강행했다.

일정은 순전히 내 위주로 짰다.
첫째날 추사유배지 / 모슬포항 / 중문해수욕장
둘째날 서귀포 / 섭지코지 / 성산일출봉 / 우도(해수욕장)
그러나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7권에서 말한
한라산 영주의 경치를 못 본게 아쉬워서 J와 다시 얘기했다.
J는 전형적인 술, 담배에 쩔은 저질체력이라 땀 많고, 힘든 등산 코스를 싫어할게 뻔했다.

그래서 제주도 볼거리는 크게 한라산과 바다 2가지다.
네가 제주도에 왔으면 한라산은 보고 가야하지 않겠냐하며,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돈내코, 어리목, 관음사, 성판악 등 다른 코스에 비해)
경치는 정말 짱인게 있다하여, 그를 설득했다.
다행히도, 일정에 대한 전권을 나에게 위임한 상태라서
아쉽지만 추사유배지는 다음으로 하고, 영실을 택했다.

15일 아침에 일어나 대충 씻고,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08년도 1월 면허를 따고, 처음 잡는 핸들이다.
부담감으로 긴장했지만, J 앞이라 태연한 척 했다.
내가 당황하면 그는 공포를 느낄까봐? 그런 배려였다.
여행 전, J에게 너는 집에 차도 있는 애가 아버지에게 연수 안 받아 봤냐고 물었는데
3-4번 받고 나는 운전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확신했단다.
서로 장롱인데, 그래도 운동 신경이 조금이나마 좋은 내가 독박썼다. 젠장.

렌터카를 인수 받고, 조심스레 시동을 걸었다.
출발하려고 기아를 D로 내렸는데. 이게 안 움직인다.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힘으로 할 게 아닌 것 같아서
뭐 이것저것 해보다가,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내리니 그제서야 내려갔다.
그리고 뒷 얘기지만 하루가 지나서야,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나에게 맞게 수정했다.
나와 J의 운전 실력이 이렇다.

내비로 영실을 지정하고, 도로로 나왔다. 밀림에 나온 사슴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무서웠다.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데, 끼어들 여유가 없어 일직선으로만 갔다.
우스갯소리로 서울에서 렌트했으면, 일직선으로만 가. 부산까지 갈 기세다. 서로 웃었다.
그러다 잘못된 길을 되 돌아 오려 유턴을 했는데, 뒷차와 사고 날 뻔했다. ㅋㅋ
처음부터 엄청 경적(비난) 세례를 받았다. 그래도 아닌 게 아니라, 시내를 벗어나니 차가 확실히 줄었다.

영실 휴게소에 이르렀다.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산을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사람 많은 산은 정말 시끄럽고
왠지 희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정감이 가질 않는다.

빠르게 가면 왕복 3시간 코스란 말에 생수 한 통과 스틱을 서로 하나씩 나눠 지고 올랐다.
전일 한라산 등정 여독이 있어, 온 몸 여기저기 쑤셨지만
그래서 영실보다 더 한 코스를 올랐다는 마음 때문인지 한결 가벼웠다.

J는 5분만에 숨을 헐떡였다. 그래도 죽지는 않겠지.
이러한 충격요법이 그에게 도움 되길 바라며, 무심한 척 앞길을 텄다.

영실 역시 초반에는 숲으로 시계가 막혀 답답하다.
그래도 한 40분 정도만 오르면 병풍능선이 나오면서 전망이 트인다.
그때부터 유홍준 교수가 말한 영실의 아름다움이 도드라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앗아간다. 경치를 감상하며, 얼음물을 들이켰는데
영실의 냉기가 기도를 타고 넘어와 오한을 느꼈다.

오백나한 바위를 뒤로하고, 정산능선에 올랐다.
평평한 길에, 탐방로로 주위 풀들이 우거져, 다리와 눈이 호강이다.

영실 휴게소 막바지 근처에 노루샘이라는 약수가 있는데.
이건 가뭄의 영향인지 물이 한 방울, 두 세 방울씩 나온다.
그래도 한국인 특유의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 몰통을 반 정도 채웠다.
물론 나 아닌 J가.

영실 휴게소에서 사발면을 먹었다. 이 더운 여름에 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고생 뒤에 먹는 음식이라 맛은 좋다.
J가 국물이 싱거운 것 같다고 하여, 사람들이 국물 남길 것을 우려하여 물을 정상 대비 2/3정도만 넣고
그에 따라 스프도 조금만 넣어서 그런거다라고, 인터넷에서 본 것을 말해줬다.

대략 정리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성판악에서도 느낀 바지만, 시계가 막혔을 때 답답함을 느낀 것은
그 동안 내가 산행 시 경치를 주로 봤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막상 나무에 내가 관심이 많았다면,
숲속 길을 정말 신기해 하지 않았을까? 한라산 저지대에만 약 70여종의 나무가 있다는데
까막눈인 나는 그 나무가 그 나무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거다.

다음 목적지인 예래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J가 물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 어제 그 정도냐고.
나도 뭐 많이 묵어본 건 아니지만, 그 정도면 시설 기준으로 A급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내 예래에서 그러한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회관을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예래는
딱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낙후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잖이 실망한 J가 담배를 피는 동안 사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최근에 해파리가 많다는 기사를 봤는데 중문은 어떤지 물었다.
해파리는 제주도 북쪽 해수욕장에만 많고
중문에는 없다며 안심하라 했다. 그리고 늦으면 입수 통제를 하니 빨리 가라 재촉했다.

요새 제주도에는 중국인들이 많다는 택시기사님의 말씀처럼
중문해수욕장에도 중국인들이 한국사람보다 많았다.
식당에서 담배 피는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눈 쌀을 찌푸렸다.

오랜만의 바다 수영이다. 대학생 때 왔던 애월해수욕장(아마…???)과
달리 바다가 검푸른색이었다. 딱 보기에도 깊어 보였다.
파도도 강해 사람들이 해변가 근처에만 옹기종기 모여있다.

스노쿨링을 생각하고 챙긴 물안경으로 바다 속을 봤는데,
하나도 안 보였다. 내 팔도 안 보일 정도로, 바다는 혼탁했다.
그래도 물놀이는 물놀이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바다로 퐁당 뛰어 들어갔다.
수영을 좀 배웠다고 으쓱해선지 제법 깊이까지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단 3명 있었다. 맨 몸으로 온 사람들만.
튜브 탄 사람들은 무서워서 여기까지 못 오는 듯싶다.
바다에서는 몸 띄우기가 싶다. 힘들이지 않고 평영으로 가볍게
쓱쓱 갔는데 가드레인 근처였다. 제법 뿌듯했다. 여태까지 수영 배우느라 고생한 게 보람 있었다.

그렇게 대략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사장님과 주변 맛집에 대해 얘기했다.
친절하게 사장님이 아주 맛있는 돼지고기 집을 추천해주셨다.
구중문에 위치한 ‘마스로’란 돼지고기 집인데
모듬 고기 소(小)자 600g에 3만원이었다. 1인분에 만원이니 비싼 편은 아니다.
제주도산 돼지라 맛은 당연 보장!  그리고 참치샐러드, 햄감자, 콩나무 김치, 파김치 등
6-7종의 ‘스끼다시’가 나왔는데 어이없게도 다 맛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시설에 대한 불만족이 싹 씻기는 순간이었다.

배 부르게 먹고, 나오며 메뉴판을 봤는데 원산지 표기가 서울과 좀 달랐다.
서울은 대게 국내산 혹은 칠레산 이렇게 표시 돼 있는데 반해
제주도는 ‘제주산’이라고 명확하게 찝어 얘기한다.
제주산에 대한 애착 및 자부심이 느껴진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8. 20. 00:28

 

지난 겨울 가족들과 찾은 제주도.
우도를 갔는데, 산호 해수욕장이 너무 아름다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곳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한 내 바람을 이루고자 올 여름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정은 8,14 저녁 ~ 8 18 저녁까지. 나름 4박 5일이다.
14일 회사에서 3시 반에 나와. 일 하느라 거른 점심을 때우고 김포공항을 갔다.
Priority pass 카드로 아시아나 라운지에서 약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홍성태 교수님의 신작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를 봤다.
어려운 말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는 훌륭한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약 9시 정도에 공항에 도착해 10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예하게스트하우스로 갔다.
하루에 2만원. 조식으로 토스트가 나오고, 빨래도 가능,
여행에 관한 정보를 스텝에게 물어볼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

여행지에 왔지만 별다른 설렘은 없었다.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제주도 풍경으로 어색함이 없다.
내 미천한 경험으로, 여행지의 설렘은 ‘낯섦’으로부터 생긴다.

내일 아침 한라산 등반 일정으로 딴짓 할 여유가 없다.
짐을 풀고, 주변 편의점에서 도시락, 마테차 2개, 복숭아 2개, 맥스봉 3개를 샀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무료 제공인 스타우트 흑맥주를 마시고 잤다.

6시 반에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겼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먹고, 스텝이 불러준 콜택시를 탔다.
관음사 코스 입구까지 미터기로 약 1만원이 나왔는데, 5천원만 냈다.
아마 게스트하우스와 콜업체 무슨 협약 같은 게 맺어졌나보다.

7시 20분부터 본격적인 산행. 카메라와 음식만 있어 몸은 가볍다.
더더군다나 개시하는 스틱이 있어 기대가 크다.
작년에 지리산 가려고 했을 때 12만원 주고 블랙다이아몬드 제품을 샀는데,
일정이 펑크나 이제서야 사용한다.
조정 미숙으로 공중에 헛질을 여럿 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제대로 활용하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체중의 30%까지 팔 쪽으로
분산시켜준다고 하는데, 고질적인 무릎 고통을 줄여 줄 것 같다.

장비의 도움을 얻어도, 더운 건 피할 수 없다.
숲이 우거져 햇빛은 차단 되지만, 워낙 후덥지근해 숨만 셔도 답답하다.
우거진 숲이 직사광선은 가려주지만, 시야 역시 막혀 땅만 보고 간다.
더위를 온 몸으로 받으며, 2-3시간 땅만 보고 간다는 것은
어지간한 멘탈과 체력으로는 확실히 버겁다.

속으로 욕하며 걷고 있는데,
내 앞에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자가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이 많아 얼마나 가나 보자 궁금했는데. 속도가 줄지 않는다.
뭐지? 어떻게 스틱을 든 건장한 남자의 걸음보다 빠르지???
나름 20-30분여 추격전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여자가 중간에 쉬자 간격이 제로가 됐다.

여자 꽁무니를 좇으며, 계속 궁금했던 것 하나.
남자와 대등한 그녀만의 체력 관리 방법이 아닌, 여자의 면상!

드디어 확인의 순간. 나는 그녀를 산 아래 둔 채 열심히 올랐다.

내 옆으로 20대 초반의 남자 3명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운동화, 워커에 청바지 면티 등 젊은 티가 난다.
그 중 한 명이 해병대인지 얼굴이 검고 머리가 짧다.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등산화, 등산복, 스틱을 챙겨도(돈)
20대의 체력(젊음)을 이길 수는 없구나 씁쓸했다.
아무리 김태희가 이뻐도, 수지와 설리, 윤아의 젊음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 연예인들이 젊음을 유지하려 돈을 아끼지 않아도,,,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삼각봉대피소에 오르니 시야가 트인다.
제주시내 전경이 다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으니
50대 초반의 어떤 아저씨가
“혼자 왔나 본데, 이렇게 경치 좋은 데서 사진 한 방 찍어줄게” 호의를 베푼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그 어느 때부터 사진 찍힘을 기피하던 나여서
2-3차례 거부했지만 계속된 호의를 거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예 그럼 멋있게 한 방 부탁 드립니다. 웃으며 카메라를 건넸다.

DSLR 사용이 서툰 아저씨를 지켜보던 친구 분이
“카메라가 좋으니 대충 찍어도 잘 나올 거야” 옆에서 참견하신다.
감사합니다. 말을 건네고 사진을 확인했는데 역광임에도 그럭저럭 괜찮다.

용진각 구름다리 약수터에서 물을 마셨다.
아침 한라산 오는 길, 택시기사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제주가 한 달 째 지독한 가뭄이란 것을 알았는데, 이 약수는 어디서 온 건지 신기했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백록담 전 마지막 쉼터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분명 시야가 말끔 했는데, 금새 구름이 올라와 사방을 가렸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더위를 앗아갔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시원했다. 가을만 되도 추울 것 같다.

밥 먹고 있으니, 아까 나 사진을 찍어준 아저씨와
조금 더 연배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신다.
귀를 기울이니 할아버지 올해 나이가 70이라는 것이다.
매년 1-2회 백록담에 오르고, 윗새오룸(한라산 영실코스)은 한 달에 2-3번 오른다 했다.
노익장이란 이런 것일까? 해맑게 웃고 계신 모습을 보며,
밥 먹다 말고 ‘부끄럽습니다.’ 한 마디 거들었다.

백록담에 오르니,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어느 단체에서 온 것 같기도 하고, 가족 단위의 무리도 많이 보였고.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백록담이 말라 아쉽네.”, “구름이 많아 앞이 보이질 않아 아쉽네”
나는 말라서, 가뭄의 폐해를 느끼게 해주는 백록담도,
구름이 끼여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백록담도 진심으로 멋있다 생각했다.

12시부터 성판악쪽으로 하산했다.
이쪽 역시 시계가 숲으로 꽉 막혔다. 제주도 동쪽 전경은 볼 수 없다.
오는 중 2무리의 외국인을 만났다. 모두 산이 아닌, 관광지에 온 듯한 차림이다.
남자는 로페, 여자는 플랫슈즈 흰바지에 흰티 심지어 어떤 양키는 맨발에 슬리퍼다.
동네 뒷산 오듯 한라산을 찾은 그들 눈에 아이, 어른 가릴 거 없이 아웃도어로 치장한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 아웃도어 열풍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복장은 왜 그런지 최근에 봤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골프를 치고 즐기는 것이 문제이지 그 용구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일은 없다.
 오히려 특별히 골프 세트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 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내 무릎 상태를 체크했다.
과한 운동을 한 듯, 무거움 느낌은 있지만 시큰함은 없었다.
뿌듯했다. 나는 그 이유를 크게 하중 감소와 내구성 증대 2가지로 보았다.

1) 무릎에 전달 될 하중 감소
  - 식단조절을 통한 체중감량,
  - 스틱을 통한 하중 분산
2) 다리 근육 강화
  - 2-3개월여 수영과 걷기를 통한 다리 근력 강화

그리고, 보다 깊게 3가지 세부 요인이 미친 비중을 한 번 생각해봤다.
스틱을 제대로 활용시 평균 25%의 체중 분산이 된다고 가정 했을 때,
약 20kg의 덕을 본 거고, 체중은 5KG 감량, 내구성 증대는 구체적인 기여치 확인 불가로…
약 스틱이 6, 체중감량이 2, 근육량 증가가 2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디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다음 산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3시쯤 성판악 초입에 도착했다. 하산 완료.
여기서부터는 5.16버스가 다녀 제주시내로 쉽게 갈 수 있다.
그리고 빨래를 대충하고, 저녁에 올 친구를 기다렸다.

비행기를 처음 타 본다는 고등학교 동창 J
비록 자주 만나지만, 여행은 이 번이 처음이다.
어렵사리 휴일을 얻은 그에게는 보다 설레리라.

J 마중 나가려,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올 때는 100번 버스를 타
반대편에서도 그 버스를 타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70, 95만 공항에 간다고 했다.
그마저도 학생들 방학 시즌이라 평소보다 2-3배 느려, 전광판에 언제 올지 ‘미정’으로 표시됐다.
인구는 적은데, 땅은 커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보다 자차 & 렌트 문화가 발달한 듯싶다.

제주도에 오기 전, 제주 출신인 매형에게 음식 추천을 받았다. 음식점 말고 시장에서
자리돔으로 만든 물회를 꼭 먹으라 했다.
J와 자리물회를 먹으려 공항에서 가까운, 자리물회를 파는 식당을 알아봤다.

그 때 시각이, 약 8시 30분.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찾은 2개의 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
불금인데 벌써? 의아했지만. 10시면 모든 상각가 문을 닫는 일본을 떠올리며 위안했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한국이다.
맛 집은 아닐지라도, 길 건너 관광객을 상대하는 횟집들이 환하다.
해안가를 따라, 조명이 즐비하다. 불나방이 불을 향해 돌진하듯, 우리의 걸음도 빨랐다.

자리 물회는 없어, 한치물회를 시켰다.
시원한 국물에 부드러운 한치. 그리고 한라산 순한맛(19℃)
내 한라산 등정의 여독과, J이의 첫 비행기 여행의 설렘을 어루만지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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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7. 22. 12:34

 

두물머리는 두 물줄기의 머리란 뜻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양수리란 지명도 여기서 기원한다.
근데, 수원을 기준으로 본다면 여기는 꼬리에 해당 할텐데.
옛날 사람들은 물이 치고 나가는 앞 부분을 머리로 인식한듯.

이 두물머리 보이는 운길산에 수종사 있다.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하여 雲吉山이라 하며,
세조가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청명한 종소리의 약수를 발견하고,
수종(水腫)이라 이름 지었다한다.

'바람이 머무는 산에, 종소리 내는 약수라...'

우리 선조들 카피력이 수준급이다.

장마기간이라, 산 중턱에 구름이 펼쳐졌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어찌 내 문장력으로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냥 그 날의 형상을 고이 기억에 담을뿐.

사람이 많이 찾는지, 절 입구까지 차가 다닌다.
운동도 할 겸 약 1시간 반정도 걸었다.

절은 아담하다. 대웅전과 몇개의 행랑채.
담백한 절밥과 비슷하다. 필요한 것만 있고 나머지는 생략.
좋은 경관이 수도에 방해 돼 승들이 찾지 아니했고,
그 결과 많은 건물이 필요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삼정헌(三鼎軒)에서 녹차를 마셨다.
두물머리 쪽으로 큰 통유리 있어, 차 마시며 강을 볼 수 있다.

원래 두 번째 우리는 차 맛이 더 좋다 하는데, 이상하게 첫째 잔이 더 구수했다.
한 시간 정도 강을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두물머리를 걸었다.
원래 강원도와 서울을 잇는 수로였는데
팔당댐이 들어선 이후 상수원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배가 안 다닌다고 한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았다. 중앙선 때문에 쉽게 올 수 있다.

세미원에서 연꽃을 보고 집으로 갔다.
또 언젠가 비 오는 그 어느 날에
삼정헌에서 녹차마시며, 두물머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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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3. 23. 15:36

회사에서 떠난 워크샵. 지인들은 회사 사람들과 놀러가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뭐 그렇긴 하다. 내 인사 평가자이기에 아무리 사적인 곳에서도 행동, 말투 하나 원래의 나 대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광고회사란 특징 때문인지, 윗사람들이 후리하다. 무한상사에서 보여지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목요일 오후 일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이 곳은 늘상 사람이 많다. 예전에 얼핏 봤던 기사. 일일 이용객 14만명

요일적 특성 때문인지 사람이 더 많은 듯. 여자들은 늘상 그렇듯 여행 자체보다 면세점 쇼핑에 관심이 많다.

애초부터 남자와 여자들은 떨어져 쇼핑했다. 그들은 '구매'뿐만 아니라 '신상점검'에도 상당한 주위를 기울인다.

역사학자들의 머릿속에는 시대별, 왕조별 주요 사건이 연대기로 기록 돼 있듯이,

쇼핑 좋아하는 여자들 머릿속에는 브랜드, 카테고리별로 상품이 자리할 것 같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4시간 여 걸리는 비행시간. 귀가 아파 무엇을 할 수가 없다.

먹먹하다 싶으면 코를 막고, 숨을 내 뱉었어야 했는데, 혹시나 고막이 찢어지거나 하면 어쩌지하는 우려로 할 수 없었다.

조그만 모니터로 보이는 Swipe out(우리나라의 출발드림팀 같은 프로인데 엄청 웃겼다.)을 보며, 고통을 외면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도차이로 귀가 아플 때는 위와 같이 했어야 했다. 스킨스쿠버에서는 그런 행동을 '이퀄라이징'이라

부르는데, 돌아 비행기에서는 그렇게 하니 실제로 안 아팠다.

 

밤 늦게 도착한 깔리보 공항. 나는 면세품을 사지 않아 걸릴 게 없지만, 몇몇은 긴장했다.

월급이 적은 필리핀 관세 직원들이, 외국인들 가방을 뒤지며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품에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못사는 나라 사람은, 인성까지 안 좋은가? 후진국은 이래서 후진국인건가?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까지 먹고 살아야 하나? 씁쓸한 생각 할 것 같다.

아직 2시간 더 남았다. 이미 날은 어두웠고, 비까지 내렸다. 버스는 산길을 달린다. 차장에 번진 빗물로

밖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간혹 보이는 불빛들이 여기 나 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건기임에도 비가 상당히 많이 내렸다. 8년째 필리핀에 살고 있다는 가이드도 이런 경우는 첨이라 했다.

배를 타고 보라카이 섬에서 내려, 숙소까지 간이 택시를 이용했다. 그런데 도로에 물이 가득하다.

하수처리 시설에 과부하가 걸려,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기 때문이다.

바퀴 1/3이 물에 잠겼다. 이거 갑자기 차 멈춰서, 숙소까지 걸어가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옷과 신발, 캐리어는 다 젖었다. 한껏 멋을 낸 친구들의 치장도 무너졌다.

밤이라 안 보여 다행이다. 씻고 짐 풀고 얘기 좀 하니 새벽 5시. 내일 일정을 위해 눈을 감았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2. 15. 00:47

전날 많이 걸어 피곤했던지, 8시 45분에 일어났다. 부랴부랴 아침을 사러가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앞 슈퍼로 갔다.

개장시간이 9시라며 출입을 금했다. 이렇게 융퉁성이 없어서야. 살짝 짜증났다. 원칙이란 늘 이렇게 양면성이 있다.

확고하지만 답답한. 무튼 그 슈퍼 법이 그러니, 대충 씻고 다시 왔다. 아침부터 도시락 냄새로 한켠이 기름지다.

놀라운 것은 제법 푸짐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편의점 도시락은 성인 남성 기준, 부족한데 일본 도시락은 반찬수,

양, 질까지 제법 괜찮다. 가격도 380~500엔 사이니깐 합당하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오전 일정을 시작했다.

여자들은 전일 허기진 쇼핑을 채우기 위해, 남바로 갔고. 나는 텐노지로 향했다. 일본 역사에 큰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내게 쇼핑은 크게 무의미 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모모다니역에서 텐노지까지는 2정거장. 걷기로 했다.

차비를 절약하기 위함은 아니다. 걸으면 더 자세하고, 많이 볼 수 있다는 경험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캡쳐한 지도를 꺼냈다.

대략 갈 방향과 시간을 계산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50분이면 족히 닿을 거리다. 자신감 있게 발을 떼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 관한 문구가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여행이란 오라는 데는 없지만, 갈 데는 많다." 라는 경구다.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그리고 또 겸손한가. 이 말의 의미를 걸은 지 20분도 채 안 돼 다시 실감했다. 걷다보니 큰 운동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뭘 하나 궁금해 다가갔다. 정구를 하고 있다. 정구는 야구와 달리 던지는 폼이 별로다.

촌스럽다. 격하게 말하면 쫌 후지다. 이 젊은 사람들이 야구를 할 거면 할 것이지, 짜세 안 나게 정구가 모람? 그래도 궁금해

하는 양을 지켜봤다. 정구 룰은 잘 모르지만 투수의 던지는 폼 빼면 야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제법 신기하다는

듯 보다 심판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는 동네 야구에서 진짜(?) 심판을 보고 있었다. 대충 설렁설렁 웃어가며 봐도

될 심판을 자세하나, 목소리하나 다르지 않게 마치 정규시합 심판처럼 행동했다. 언뜻 보기에 허세 같아 웃기지만 그에게서

프로의식이 느껴졌다. 작은 것을 하더라도 열심히 한다.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최선을 다한다.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흔히 꼽는 일본 민족 특징 중 하나가 장인정신인데, 이러한 모습이 국민 개개인에 깊숙히 관여 돼 있다는 것을 보니 놀라웠다.

그래서 음식 하나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 하고, 물건 판매 시 친절을 다 하는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 했다.

심지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도 때로는 편하게 하려고 꾀 부리고 모른척 눈 감기 일쑤였다. 그런 내 모습과 심판을 비교하니

부끄러웠다. 비록 한 때의 작은 깨달음이지만 일본 여행 속 큰 기억으로 자리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발 걸음을 뗐다. 내 주변의 큰 건물명과 지도에 새겨진 글씨를 비교해 가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살짝 뿌듯했다.

원래 새해를 맞아 텐노지에서 팥을 뿌리는 행사를 한다고 했는데 취소됐다. 뭐 크게 아쉬움은 없다. 절 내부로 들어갔다.

절의 역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냥 일본 절이 어떤지 경험삼아 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 불교도 기복신앙 성격이 강한 것 같다. 다들 그렇게 무엇을 빌러 왔는지, 내가 처음 텐노지에 발을 들여서 본 것과

마지막으로 나갈 때 본 것 모두 제(祭) 였다. 동쪽 문으로 들어와 비석무덤(?)을 지나니 첫번째 제의 현장에 다다랐다.

사진 촬영이 금지 돼 찍지는 못했다. 방문객들이 조그만 종이에 무엇을 써서, 승려옷 입은 사람에게 주면 그들은 그것을 받아

약수물위에 뛰우며 모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의 염원이 신성한 물위를 흘러, 그들이 바라는 곳으로 닿길 바라는 의식이구나

이해했다. 그런데 여기서 퀘스쳔 하나. 이렇게 빌면 현실이 달라질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복신앙이 비는 사람의 소망에

대한 관여도를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로 이렇게 먼 곳까지 시간과 돈을 드려 원하는 바를 강하게 인식시키면

그렇지 않을 때 보다 행동이 따르지 않겠나 하는 점이다. 다만 한 가지, '바램'에 대한 적당한 댓가를 치뤘으니 하는 안일한

생각만 없다면 기복신앙 자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곳은 귀정당(龜井堂)이라 불리는 조그만

연못으로 돌거북이가 물을 뿜고 사람들은 그 물을 극락과 이어진 샘이라 여기며, 사자의 이름을 쓴 종이를 띄어 명목을 빈다.)

두 번째 제의는 육시당에서 어떤 승려가 역시 아까 봤던 비슷한 종이를 받아 불로 태우는 것이다. 제법 의엄 넘치며 웅장했다.

뭘 비는 지는 역시 모르겠다만, 이 역시 비는 사람의 바람이 하늘에 닿기를 바란다는 뜻 같았다. 내가 볼 때 지극히

경망(?)스러운 행동이 무엇으로 하여금 참여한 사람에겐 큰 의미일까? 내가 불로 태우면 사기고, 왜 승려가 태우면 의식일까?

나는 그것이 권위가 주는 신뢰라고 생각했다. 그 권위란 옛날에 대중들이 뭣도 몰랐을 때는 신에게서 받은 계시로 포장하면

통했다. 문자 보급 후에는 '지식'이 계시를 대신해 종교인들의 권위를 세워줬다.(근대까지 일반 백성들의 문맹을 감안할 때)

그러면 요즘에는 무엇이 종교인들의 권위를 세워줄까? 종교인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도 많고, 성서에 언급된 신비한 영적능력이

과학으로 검증 불가한 오늘 날. 종교인을 종교인 답게 만드는 근원적 힘을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정신병에서 찾았다. 경쟁일변도의 '피로사회'에서 지친 일반 대중들은 영적 힐링이 필요하다.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종교인들의 지혜다. 마치 법정스님과 혜민스님의 최근 족적처럼. 종교인들은 대중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혜로 권위를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 제의는 중심가람에서 본 '곡'이다. 이 역시 무슨 종이를 받아들며 곡을 한다. 그 주변에 안 어울리게도 의자가

있다. 다른 곳은 다다미가 깔려있었거든. 노인분들이 의자에 앉아 곡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나도 좀 쉴겸 의자에 앉아

지켜봤다. 이 분들은 또 무엇을 비는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프란시스 베이컨의 "아이들이 어둠을 두려워하듯이 어름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남은 여생과 사후의 명복을 일찌감치 빌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2. 12. 23:38

오사카성 근처에 있는 비지니스 파크역에서 우리는 다시 모였다. IMP(internation market place) 빌딩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현지에서 먹는 오꼬노미야끼는 어떨까 궁금했는데 짰다. 비단 이뿐 아니라, 나머지 식사들도 대부분 짰다. 왜 짜게 먹는걸까?

그리고 우리나라 술집에서 먹는 것과 별 차이 없다. 자본과 세계화의 생리라고 해야할까? 돈 있으면 한국에서도 일본 음식에

익숙해 질 수 있다. 편한세상이다. 하지만 좋은세상인지는 모르겠다. 수상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토요일 오후에 공원에 나와

운동하는 인파가 많았다. 조용한 동네. 공기도 좋고. 한적해서 살기도 좋을 것 같았다. 여기서도 궁금증. 유난히 많은 자판기가

의아했다. 일본 시내를 비롯 주거지 거리거리마다 자판기가 많다. 커피숍의 발달로 사양길로 접어든 우리나라 자판기 사업과

대비된다. 이리 공급이 많은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인데, 일본 사람들이 음료수를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민족도

아닐테고. 티타임을 시간마다 갖는 여유로운 사람들도 아닐텐데 말이다. 뒷날 찾아보니,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일본 사람은

슈퍼에서 물건 살 때 사람 마주치는 것마저 꺼려 자판기 문화가 발달 했다고 한다. 담배, 음료수, 간단한 음식까지. 서비스

업종에서 만난 일본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단 인상을 받았는데, 그 이면에는 사람을 피하는 습성이 있다니. 무서운 놈들.

무튼 수상버스는 패스가 있어 무료다. 전날 노숙의 여파로 피곤했던 나는 잠깐 잤다. 20분 걸려 요도야바시항에 도착했고,

오늘의 종착지인 우메다까지 한 정거장, 전철로 이동했다. 우선 패스에 붙은 무료 관람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Hep Five

관람차를 타기로 했다. 고층 빌딩 위에서 돌아가는 빨간색 다람쥐 바퀴 같은 거. 아래서 볼 때는 몰랐는데, 타보니 무서웠다.

올드보이 명대사가 생각났다. 상상력이 있어 비겁 해지고, 공포에 떤다. 떨어질까를 생각하지 말고, 오사카 시내 풍경을

봤었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여자애들이 나 놀래켜 준다고 겁도 없이 흔들어 대는데 떨었다. 그래도 분위기 낸다고

채연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관람차 내부에 스피커와 잭이 비치 돼 있었다. 1974 way home. 우연찮게 일본 뮤지션인

Mondo Grosso의 곡이다. 금빛 낙조를 받으니, 멍~했다. 무슨 느낌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방감과 노곤함이 만든 멜랑꼴리함

같기고 하고, 수필가 윤오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원의 가을> 中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아마 그 순간 나는 한가한 사람이었나 보다.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흑인의 재즈 보컬도 들었다. 시간 이동으로 쌍팔년도 뉴욕에 온 듯한 느낌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자들의 쇼핑 타임이 시작됐다. 나는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내가 관심이

없어놔서인지. 어느 건물인지, 이름도 기억에 없다. 조금 걸어 공중 정원으로 갔다. 오사카의 야경을 보기 위함이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요기를 채우기 위해 맥주와 소세지를 샀다. 길빵을 했다. 외국에 나오면 이런 프리함이 좋다. 대도시의 번잡한

거리에서 음주라니.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니깐. 고삐 풀린 생각이 행동의 제한을 없앤다. 생각보다 맥주 값이 안 싸다.

2,3천원? 채연왈. 이곳이 영화 타워의 배경이라고 했다. 뭐 큰 관심 없던 영화라 와닿진 않았다. 173이라는 티켓을 받아 들고

꼭대기로 올랐다. 건문의 높이를 말하는 것 같다. 야외에 나가 바람을 쑀다. 현지가 물었다. 서울과 오사카중 어떤 곳의

경제규모가 더 클까? 나도 궁금했다. 직관적으로 서울 같았지만, 높은 곳에 올라와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사카의

야경이 건물의 크기와 경제 규모의 넓이를 웅변했다. 서울의 주요 상권인 종로, 여의도, 강남을 합한 것보다 큰 것 같았다.

1인당 국민소득도 일본이 높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오사카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했고. 나중에 찾아보니 오사카가 1.5배 정도

높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많이 돌아다녀 다리가 좀 아팠다. 그래도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약국에 들려 아이봉과 휴족타임

동전파스 같은 아이템을 구매했다. 일본은 정말 깨알 같은 아이템이 많다. 돌아갈 때는 타니마치선을 이용해 다니마치

9번가에서 내려 츠루하시로 갔다. 다들 저녁을 안 먹어 배가 고팠다. 역 앞이라 먹을 데는 제법 있었고, 건물이 다소 허름한

꼬치집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에는 4개의 테이블과 일식집처럼 주방방 요리대 앞에 5개 정도의 앉을 자리가 있었다. 맛은

모 개인차가 있어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진짜 일본 서민들이 찾는 술집 분위기다. 나름 심야식당 느낌이

라며, 치켜세웠다. 비용은 제법 비쌌다. 맥주 500CC에 500엔? 꼬치도 한 개에 200,300엔 하니깐.

그래도 여행의 묘미는 이렇듯 일정에 없던, 변칙이 주는 즐거움이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2. 9. 17:25

잠을 못 잤다. 불안했던지, 지속적으로 깼다. 5시 좀 못되서 공항 내 안내방송을 듣고 일어났다. 고장난 플레이어에서 일정구간

반복되는 것처럼, 모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성 멘트가 거슬렸다. 일어나 두리번 거리고, JR 전철로 향했다. 개찰구는 닫혀

있었지만, 불들이 들어와 있다. 반가웠다. 자세히 보니 첫차가 5시 53분이었다. 일본이 처음인 나는 표 끊는 것도 어렵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좋다. 여유롭게 티켓 발매기를 구경했다. 기차가 올 때 까지 할 것도, 갈 데도 없어 플랫폼에서

책을 봤다. 피로사회. 제목이 내 지금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차가 왔다.

텐노지 급행인데, 대략 5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창밖 풍경이 신기했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둥둥 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모든 게 낯선 환경. 멀쩡한 한 사람이 바보가 된다. 글도 못 읽고, 방향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나는 표류한다. 졸다 깨다를 반복해 텐노지에서 내렸다. 모모다니 역으로

가기 위해 JR 간조선을 기다렸다. 토요일 아침 7시인데 학생들이 많았다. 중, 고등학생도 있었지만 초등학생들도 보였다.

얘네는 주5일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아침 7시에 등교해야 하는 초등학생들의 처지가 좀 안쓰러웠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교육열이 강한데, 그런 사회적 풍조 속에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키 위해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 같다. 역에서 내려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가까웠다. 오기 전 찾아오는 동영상 보기를 잘 했다. 문 앞에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타지에서 조우.

자다 깬 부시시한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아직 계획한 시각이 아니기도 하고, 몸도 피곤해 한 시간 정도 잤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오사카성, 오후에 우메다이다. 아침은 츠루하시 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일본 식당은 점원이 주문

받는 곳도 있지만 손님들이 직접 기계에서 메뉴를 보고 표를 끊는 시스템이 보편화 돼 있다. 이 집 역시 기계가 메뉴를 뽑아

주는 시스템인데, 바빠서 주문 시간을 줄인다거나, 나 같은 외국인들의 경우 효율적일 것 같다.

예전에 오사카성을 왔던 현지와는 쪼개졌다. 텐마바시에서 내린 채연과 나는 조금 헤맸다. 지도를 보면서 이동했지만,

은근 방향치인 나는 독도법에 익숙치 않다. 여자인 채연은 말 할 것도 없고. 다행히 채연은 적극성이 나보다 뛰어나기에 지도를

가리키며 도꼬데스까?를 외쳤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라고 하는 지

대략 30년 살아온 눈치로 이해하고, 아! 쏘데스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로 회답하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저 멀리서 천수각 위용이 드러났다. 예전에 잠깐 봤던, '오다 노부나가',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나오던 곳.

소설 내용은 다 까먹었지만, 그래도 늘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멀리서 성벽의 위압감이 대단했다. 그 옛날에

어떻게 돌을 쪼개고 날랐는지 궁금증이 일만큼 성벽은 매우 높고, 두터웠다. 적에게는 난공불락의 근심거리였겠지.

해자를 건너 성 입구로 향했다. 길이 일자가 아니라 제법 꼬불꼬불했다. 해자가 뚫렸을 경우를 대비한 설계 같다.

적들을 미로 속에 몰아 넣고, 공격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이 엿보인다. 조금 올라가니 전국시대 각 영주들의 문장이

새겨진 바위들이 보였다. 전국통일을 한 위엄이며, 자랑이다. 마치 하나라가 중국 전토를 통일하고, 모든 무기를 회수해

다시는 전쟁이 없을 거라는 의미로 정을 만들었듯이. 천수각 안으로 올랐다. 8층에 오르니 오사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탁트인 경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 해방감을 준다. 이 곳에서 오사카를 지켜봤을 히데요시를 떠올렸다.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자자손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성을 쌓았겠지만 히데요시 사후 불과 10년도 못 넘겼는데.

건물 안은 아주 많이 현대화 돼 있다. 전국시대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사용했던 갑옷과 무기들

건축양식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우리나라 지방 박물관을 갈 때 마다 보았던 촌스러운 재연 같은 것들도. 보면서 문화재 개발과

활용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았다. 말로는 창의적인 소재, 역사 컨텐츠 떠들지만 막상 보면 없다. 새로운 방식을 생각지 못 하는

공급자도 문제겠지만 역사에 관심 없는 수용자에게 좋은 것을 준다한들 받아들여지겠는가. 이런 역사적인 장소는 학습의

장인 동시에 상상의 소재다. 단순 사진 찍고 가는 코스로써 기능한다면, 역사컨텐츠는 그냥 말에 그칠 뿐이다.

경내를 돌고, 내려가는 길에 초등학생들의 유도대회를 봤다. 우리나라에서 태권도가 국민 체육이듯, 일본의 국민체육을

방증하는 것 같았다. 매화가 없는 매화정원을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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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3. 2. 5. 00:33

지난 12월 현지가 채연과 함께 일본을 가자고 했다. 나도 뭐 나쁠 거 없어서 흔쾌히 응낙했다.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출발이 다가왔다. 그간 여행 일정에 대해 가볍게 논의하고는 했지만, 뭐 하나 나온 게 없었다. 벼락치기. ㅋ

금요일, 칼퇴하고 바삐 서울역으로 향했다. 회사가 위치한 방배동과 퇴근 시간을 고려했을 때 공항철도가 최적의 선택이였다.

서울역은 늘상 다녔지만, 공항철도는 처음이라 조금 헤맸다. 일반 지하철과 달리 서부역 쪽에 위치해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처음부터 여유가 없었다. 피치항공 9시 20분 출발, 간사이공항 11시 도착인데, 텐노지행 막차가 11시 32분이였다.

일본이 처음인 나는 수속 및 헤멜 시간을 고려했을 때 과연 시간에 맞춰 전철을 탈 수 있을까 금요일 내내 불안했다.

까딱하가다는 공항에서 하루를 세어야 했다. 조바심 때문에 신경성 긴장이 지속됐다. 지금 돌아보면 괜한 고민이였다. 풉. ㅎ

친구들의 면세물품을 찾고, 햄버거로 요기한 뒤 출발을 기다리는데 비행기사정으로 출발이 10분 지연될거란다. 불안했다.

그래도 큰 차질 없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46분에 떴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를 몰랐다. 출발은 지체됐지만,

기장이 속력을 내서 원래 약속했던 시간에 도착할거라 기대했다. 원래 그런거 아닌가? 약속시간에 늦으면 뛰듯이.

철없는 생각이었다. 11시 30분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은 짐 부치는 데도

요금을 부과해 대다수의 사람이 캐리어를 들고 탄다. 그래서 타고 내리는 데, 일반 비행기보다 시간이 배는 걸린다.

텐노지행 막차는 떠났을 시각이지만,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오사카에는 비가 내렸다. 내린 곳에서 공항입구까지 비를 피하라고

우산을 줬다. 펴보니 구겨져 있었다. 불길했다. 미신이라 여기며, 수속장으로달렸다. 수속장까지 대략 300미터 정도 되는데

블로그에서 한 사람 제낄 때 마다 수속시간이 20초 정도는 단출될 거라했다. 나름 열심히 뗬지만 나는 중간이였다.

수속을 마치고 제1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것도 한 5분 걸렸다. 공항 도착 전, JR선을 끊기 위한 메뉴얼을 되새기며

봤던 장소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반가웠다. 그것도 잠시. 불이 꺼져 있었다. 불길함이 현실이 됐다. 낙담했다.

사람이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으면 현실을 부정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럴리 없어. 내가 공항에서 노숙할리가 없잖아?

그래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나는 오늘 게스트하우스에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어. 버스를 알아봐야지. 이러며 공항 여기저기

들쑤셨다. 그러기를 30분. 나는 깔끔히 인정했다. 첫차를 타기전까지 간사이공항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사실을 받아

들이고나니, 마음은 편했다. 친구들에게 못간다는 문자를 남겼다. 씁쓸했다. 쌰부랄. 그리고 어디서 남은 시간을 떼울까 장소를

물색했다. 그래도 위안이 된 것은 나와 같은 무리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자리를 깔꼬, 노숙 태세에 도입했다.

어떤 중국인은 양말을 벗고 의자를 붙이고 누워있더라. 실용을 중시하는 대륙의 기상인지, 남신경 안 쓰는 개인특성인지

놀란 와중에 더 놀라운 광경이었다. 24시간 맥도날드도 있었지만, 거기 있는다고 딱히 할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어서,

조명 빛이 덜 한 쇼파에 누웠다. 핸드폰에 넣어둔 <리더의 조건> 다큐를 보고 있는데 공항경찰이 오더니 내 여권을 검사한다.

노숙인들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는 친절함 ㅋㅋ 그래도 오사카에서 첫날인데 벌써 잠을 청하긴 아쉬웠다. 낯선 객지에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왜 그럴까? 나는 왜 낯선 곳에서 음악을 듣는데 마음이 편해졌을까?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긴장한다. 낯선 것들을 내 것으로 정보화하는데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이란

익숙한 놈은 내 의식에 침투해 새로운 것들의 정보처리화 과정을 지연시킨다. 그래서 나는 비록 낯선 곳에 있었지만

익숙한 것들을 접함으로써 맘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름의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