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2022. 6. 23. 15:09

류성룡의 임진왜란 후기다.

후손들이 오늘의 참화를 다시금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과 다르게

후손들은 불과 4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경계하지 못했다.

다시금 청으로 침략을 당했기 때문이다.

 

책 초반은실패와 부끄러움의 연속이다.

장수들은 도망가고, 임금과 지도층의 영은 지방에 닿지 않는다.

백성들의 원망도 보인다.

있는 사람들은 먹을 거 챙겨 도망가면 되지만,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가 없다.

전쟁이 길어져 농사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먹고 7년의 시간을 버텼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도성을 버리고 피신한 왕조는

이순신의 활약과 명의 원조로 한 숨 돌리지만

문제를 해결할 궁극적인 솔루션은 없다.

그렇기에 조선 땅에서 벌어진 전쟁을

조선이 끝낼 수는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끝나기 만을

누가 대신 끝내주기 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전쟁에 임하는 부모와 자식의 마음은다르다.

청의 부흥이 신경 쓰이는 명은 병사의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처음과는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소극적으로 임하고,

 

후환이 사라지길 바라는 조선은

명이 후퇴하는 일본 군사들을 소탕해주길 바라지만

마음 뿐이다. 혼자만 애탄다.

 

그렇게 전쟁은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나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도 마지막 싸움에서 전사한다.

아마 책에서 개인에 대한 분량으로는 이순신이 제일 많지 않나 싶다.

그만큼 고마움과 미안함이 컸음이리라.

 

누가 죽고, 누가 죽고...

누가 도망가고, 누가 도망가고..를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그의 속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느끼는 그의 심리는

분노와 슬픔, 부끄러움도 아닌 안타까움이다.

 

"어쪄다 이 지경이 됐을까?", "무엇이 잘못 됐을까?"

 

문관들과 장수들의 실패를 열거하지만,

결국 그들을 임명한 것은 왕이고 조선의 시스템이다.

그것에 대해 담지는 못 했겠지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 같다.

 

개인(왕)의 역량에 의해 나라가 의존하는 바가 크고,

중요한 순간에는 온 백성의 명운이 걸리다 보니

똘똘한 사람이 오는 게 중요한데,

그것을 본인들이 선택할 수는 없고,

혹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었을지라도

시간이 흘러 나태해지고 변질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그는 

정몽주(보수)와 정도전(개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새삼 민주주의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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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독서일기2022. 5. 27. 12:54

올해 대선 전후에 봤던 책이다.

시국이 어수선해서 그런지, 해당 내용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됐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이 된다.

그리고 같이 반정을 도모한

이괄 때문에 성을 버리고 피난을 간다.

 

정통성 결여의 컴플렉스와

왕위와 목숨을 잃을 있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내치의 불안함 속에서

대외 여건더욱 최악이다.

 

임진왜란 나라를 구해준 명나라와

신흥 강국 청나라 사이에서 갈등한다.

 

반정의 명분 하나가 광해군의 실리 외교인데,

(나라를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를 저버림)

때문에 명분이 중요한 조선은

예로부터 오랑캐였던 청나라에 유화 정책을 펼치지 못한다.

 

청은 정벌에 앞서 후방의 안정화를 위해 조선을 침략한다.

그렇게 40년만에 또 한 번 전쟁을 겪는다.

 

지도층의 문제로 백성들이 겪은 피해는 참으로 크다.

죽은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책을 덮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인조는 어땠을까?

그는 죽는 순간에 자기가 왕위에 오른 것을

만족해 했을까? 아니면 후회했을까?

 

그는 반정으로 인해 잃은 것들이 너무 많다.

고매한 조선 선비들의 정통성, 명분이란 측면 때문에

자격지심 열등감을 겪었고

 

이괄 또는 잠자잭인 역모와 청에 의해

지속적으로 목숨을 위협 받았다.

 

병자호란 이후로 소현세자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고

결국 큰아들과 손자들을 잃었다.

 

반정 , 기쁨은 순간이었지만,

후의 공포와 자괴감은 영원이었다.

 

왕으로 어떤 위업이 있다거나,

아버지 또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행복했을지 모르겠다.

그는 감는 순간 어땠을까?

 

더불어 매우 등 떠 밀리듯 별이 된 그 분은 

나중에 어떤 생각을 하실까?

 

회사 근처 석촌호수에 삼전도비가 있다.

굴욕의 역사는 창피스러운지, 

찾는 사람도 없고, 유적으로써 가치가 별로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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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카테고리 없음2022. 5. 13. 11:26

시간과 지역에 상관 없이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면이 있다.

 

옛날 신라시대나 근대 유럽 사람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이 옳은것일까?

지금 나도 하는 생각들을 했을 것 같다.

 

아래 동상이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미륵반가사유상은 출가 전의 싯타르타이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 신곡의 지옥문에서 인간 군상을 지켜보는 시인이다.

 

미륵은 종교, 시인은 철학을 상징하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시간이 지나도,

턱을 괴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은 비슷한가보다.

 

나는 보통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며

이생각, 저생각하는데 그 시간이 참으로 중요하다.

 

일적인 부분에서 복잡하던 것들이 정리 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선명해지며,

 

지난 온 내 삶에 대한 후회와 미련, 아쉬움을 흘려 보내기도 하고

다가올 내일에 대한 욕심과 두려움을 떨쳐 보내기도 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려면,

가벼워야 하고, 머무르지 않아야한다.

 

무엇을 덜어내고, 내려 놓을지 고민하다 보면,

반가부좌를 털고 일어나 씩 웃게 될 날 있지 않을까 싶다.

 

 

 

<출처 : 미륵반가사유상-위키, 생각하는 사람-한국경제>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