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생활2026. 3. 29. 03:49

캐나다 문화를 표현하는 여러 키워드 중 하나는 모자이크다.
미국의 ‘멜팅 팟’이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은 버리고, 
미국적인 것으로 탈발꿈을 요구한다면
모자이크는 점으로써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 돼, 캐나다 전체의 방향성과 일치한다면, 
소수일지라도 함께 잘 살아가자는 문화다.

작년 여름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돼, 나는 이 문화를 체험했다.

집 근처 Gap 매장에 갔는데, 손목이 없으신 분이 수선을 하고 있었다.
내부자들의 이병헌처럼, 의수를 찬 것은 아니고,
후크선장처럼 뾰족하고, 무서워 보이는 갈고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랐고, 환하게 웃으면 내게 인사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장치 때문에 서비스 쪽 취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장애인 우선 고용법이 있더라도,,, 나는 40년 넘게 살면서 회사는 물론이고,
공공기관인 도서관에서만 딱 2번 장애인을 봤다.
그렇게 사회적 인식이란 진입 장벽과 유리천장이 엄연하게 존재한다.
직업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란 엄청 큰데,
우리는 편견 내지는 무지로 은근한 차별을 당연시 했던 것 같다.

신체 조건의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지 않았던 그 분에게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심 장애인에게 학습된 ‘동정심’을 보이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 것은 너네 나라에서만 필요한 것이지, 여기는 불필요하단다.”
라고 누군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아이들 학교 도시락과 간식을 싸야 하는데, 금지 품목이 꽤 됐다. 
생선(참치, 연어), 갑각류, 너트류는 학교에 가져갈 수 없었다.
애들 반찬으로는 거의 고기 밖에 싸줄 수가 없었고,
에너지바 혹은 과자 등도 상당 부분 챙겨줄 수 없었다.
북미 쪽에는 인구의 약 3%가 땅콩 알러지가 있고, 
생선 알러지도 드물지 않게 있어 학기 초에 학교로부터 여러번 공지를 받았다.
효율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에이~ 뭐 2-3% 갖고 그래 그럴 수 있지만,
여기 이 나라는 2-3% 소수의 건강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아이들 식단의 건강과 입맛을 위해 다양한 것을 싸주고 싶지만,
이러한 학교 방침 때문에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그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라며..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소수 인종 및 언어에 해당하는 우리 아이들을 떠올렸다.
몇몇 음식에 취약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 전체 및 학부모가 노력한다면,
영어를 잘 못하는 우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생님들 및 교직원들도 노력할 것이다.
법이란 것이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 평상시에도 지켜야 하듯이
캐나다의 이러한 문화 역시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다소 내게 불편한 것이 있더라도 지켜야 함을 알게 됐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다 같이 잘 살수 있으니깐…
그것이 캐나다의 모자이크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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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험블던
일상2026. 3. 20. 02:33

윤오영 선생님의 비원의 가을이란 수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 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이 글을 처음 봤을 때, 위대한 사람이란 역사적 위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범상한 사람이란 평범한 장삼이사… 들을 연상했으며
한가한 사람이란 사실 마땅히 와닿질 않았다. 
특히 시간과 마주 선다는 것은 표현 자체가 아름답긴 했으나, 
젊었던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무엇이든 하길 바빴으니깐… 공부든, 일이든, 술자리든…

그런데 시간이 생긴 요즘, 저 문장을 계속 곱씹어 보게 된다.
일단, 선생이 이 글을 쓰셨던 70년대에 한가함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역사 이래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소수 몇몇 말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 한가로이 지나가는 구름과 바람을 느낄 수 있었던 부류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잘 살아보세라는 기치 아래, 우리 조부모, 부모 세대들도 주말 없이 열심히 사셨으니깐.
수필 속 선생처럼 많은 분들이 은퇴 후 비로소 그 한가함을 맞이한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한가함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휴식이고 재충전이겠지만,
매일을 하는 것 없이 시간과 마주한다면, 그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혼돈의 상태에 놓인다.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려는 손오공처럼, 벗어나려해도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원하는 파이어족들의 삶도 준비 없이 맞이한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이 개미지옥의 삶을 벗어나려면, 나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 돼야 한다.
즉, 내 시간을 내가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질서란 빈 여백에 돌맹이든, 벽돌이든 하나씩 쌓아 올려야 한다.
그것이 집안일이든, 집앞 산책이든, 무엇을 새로 배우든… 
그렇게 나를 다시 범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존에 우리는 태어나서 학교 다니고 일하고… 이런 시간을 50-60년 보냈는데,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 누군가 설계한 삶에 나란 사람을 맞춰 이뤄낸 결과이다.
사회에서 나를 놓아주면, 그 다음은 비로소 진짜 내가 나를 만들어 내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지금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고 본다. 
예방 주사가 아프긴 하겠지만, 그래도 감기에 걸려 몇일 드러누워 있는 것 보다는 낳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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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험블던
캐나다 생활2026. 3. 15. 06:38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을 보면, 우리나라 초기 이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일제에게 외교권을 뺏기기 전, 단순 노동력 수출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70-80년대에는 외화 유입을 위해 파독 광부, 간호사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독일 말고도 북미, 남미(농업 쪽)로도 많이 갔다고 하는데, 지니고 나갈 수 있는 달러를 
70년대에는 3천, 80년대에는 5천 달러 이내로 제한했다고 한다.
아무리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더라도, 저 정도 규모의 외화면, 가자마자 빈곤층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 발달하지도 않은 세상에 진짜 몸뚱이 하나만 갖고 바다를 건너,
말도 안 통하는 세상에, 친구도 하나 없는 지역에서 어떻게 지내셨을까?

당장 쌀과 반찬은 어디서 사며, 애들 학교는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가자마자 멘붕이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란 복잡한 의사 소통 없이 가능한 

접시 닦이, 편의점, 세탁소 등의 단순 노동 의주였다.
이민진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하시는데,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이민자 프로토콜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 교회에도 아버지,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 여럿 있는데,
그 분들은 애초에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들이셔서, 혹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힘들단 얘기를 잘 안 하시는데, 얘기 조금만 들어보면, 어찌 그 시대를 살아왔나 싶다.
식당 및 편의점을 운영하셨는데, 당연히 주말은 없고, 매장 운영은 20시간 이상,
문화나 지역에 대해 아는 거 없지, 인종 차별은 당연시 되지… 가족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지,
여기 온 이상 악착 같이 돈 벌어 식속들 먹여 살리고, 남은 돈으로 한국에도 보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캐나다 온지 20-30년이 지나서도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여기저기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려, 자식들은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투입되었다.
방과 후 2-3시간 카운터를 봤다고 하는데, 부모님들보다 말이 잘 통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부모님 고생하는 걸 바로 옆에서 본 자식들은 명문대 진학 뒤, 
Google,Bell, TD bank 등에 입사해 백인 주류층에 편입했고,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다.
물론 자식들이 위와 같이 잘 풀리지 않은 케이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님들이 하셨던 소규모 자영업을 이어 받아 뿌리를 내리고 잘 사는 것 같다.

그 동안 한국에서 살 때는 잘 몰랐다.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지.
이렇게 나와보니, 한국인 이민자가 겪은 힘듦에 대해 알게 됐고, 나도 겪고 있고…

한국에 있을 수 많은 이민자들, 함께 일했던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한국 생활은 어떠니 하며, 말이라도 한 번 걸고, 
그들 고향 식당 함께 가자고 그랬을텐데...  내가 그 입장에 처해 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사회적 소수 또는 약자에 처해보는 경험도 해외생활을 통해 알게 되는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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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험블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