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7. 8. 31. 15:18


올 6월, 내게는 유난히 힘든 시기였다.

아이가 조리원을 나와 가족 구성원이 되면서

다소 부끄럽긴 하지만, 나는 힘 들었다.


처음은 다 서툴다. 

부모로서 나의 처음도 매우 서툴렀다.

울어도 돼 우는지 모르고, 

새벽에 아이가 3-4번 깨기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걱정은 되고, 내일 출근할 생각에 시계는 보지만

아이의 울음은 멈추질 않아 답답하고...

벌써부터 내일의 피곤이 몰려 오는 것 같고,

여러모로 아내와 나 모두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양치를 하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잠 못 자면서 키우셨을 거라 생각하니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나는 항상 나 혼자 컸고,

당신들은 내게 해준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했다.

대낮, 회사 화장실에서 나는 울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또는 부모가 돼 가나보다.

그러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에게나 나에게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

한 생명이 태어 나기 위해,

혹은 또 다른 차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땀과 노고, 그로 상징되는 눈물이 필요하다.


처음 임신 테스트기를 보며, 가슴 졸였고

처음 기형아 테스트 검사 전날, 혹여나 하는 마음에 잠 못 이뤘고

처음 아이가 세상에 오던 날, 나를 보고 웃고, 옹알이 하던

많은 날에 아이와 나는 울었다.


그리고 나를 키우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을 부모님

모두 그렇게 한 생명을 두고, 운다.


생명은 많은 기쁨과 환희를 주기에

그만큼 가슴 졸이고, 걱정 할 일도,

가슴 무너 질 일도 많나보다.


아들아, 이쁜 네가 오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

사랑합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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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일상2017. 5. 22. 17:57


식구가 늘었다. 짐도 늘었다.

집이 좁아 기존의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

가전을 제외하고 나면 옷과 책 뿐이다.


그녀는 내게 안 보는 책들을 팔라고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지식인 책을 버릴 수는 없었다.


고민하다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의 지식 혹은 자신감이 책 몇 권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나는 부족한 내면을 책 몇 권으로 가림막하려 했던 것인가?


맹목적으로 돈과 유명 브랜드를 모으는 사람과

유명인들의 책을 모으는 나와 무엇인 다른가?


유명 브랜드를 걸쳤다고, 그 사람이 유명 브랜드가 아니듯

지식인들의 책을 갖고 있다고 내가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로 외양을 치장하고,

나는 지식이란 허영으로 나를 꾸미고 싶었을 뿐이다.


살불살조다.

배움, 개선을 향한 의지로 책을 보는 것은 좋지만

책 자체에 나 자신이 함몰 되서는 안 된다.


법정스님이 난을 버렸듯

나도 책 욕심을 버리련다.


몇 권의 책을 더 본다고

몇 권의 책을 안 본다고

내 삶은 크게 영향을 안 받는다.


나는 이미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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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성경공부2017. 5. 4. 12:52


창세기전에 나오는 얘기다. 

성경을 안 본 사람이라도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다.

동생인 아벨이 하나님 사람을 독차지 하는 것 같아

형인 카인이 질투로 눈이 멀어 동생을 죽인다는 내용이다.


요새 육아 책을 더러 봐서 그런지,

둘째가 생기면 첫째의 질투가 심하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본다.


아무래도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

그것이 반 이상으로 쪼개지니

어린나이에도 동생을 경쟁자로 생각하나보다.


이런 맥락에서 카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주위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 했는데,

지금은 관심도 안 가져 주니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나?


그런데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아벨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싶다.


첫 번째는 삶의 행복을 외부에서 찾은 것이다.


카인은 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나를 사랑하던, 그렇지 않던 나만의 길을 가면 된다.

그들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면 안 된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주변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서는 안 된다.


카인이 자존감이 강해서, 자애심 또한 충만했다면

하나님과 부모님의 인정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둘 째는 욕심의 지나침이다.


여기서 형과 동생은 가족 내 계급 구분이고,

보다 확장시켜서 생각한다면 더 가진자와 덜 가진자로 볼 수 있다.


동생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모든 사랑을 형이 받았다면,

총량으로 봤을 때 형이 받았던 사랑이 더 클 수 있다.


그런데 여태껏 받았던 것은 물론 지금 받고 있는 것은 도외시 한 채,

그 한 순간에 하나님이 동생을 좀 더 편애한 것으로 배아파 하는 것은 

자족하지 못하는 삶의 태도다.


만약 그가 여태 받은 것에도 감사했다면,

자기가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자로써, 동생에게 가는 것에도 응당 배아파 하지 않았으리라.


99를 가진 자가 100을 채우기 위해 

1밖에 없는 자의 소유물을 빼앗으려 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자존감이 부족하고, 욕심 많은 카인은

동생을 살해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가족 공동체를 파괴한

인류 최초의 범죄자가 됐다.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 되면서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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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