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따수워 잠을 잘 잤다. 너무 후끈한 나머지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 좀 걸었다. 장사 해수욕장을 비롯 길 건너 정류소 일대를 걸었다.
군대에서 외박이나, 휴가를 나갈 때면 항상 이곳에 왔다. 전날 잘 다려 놓은 전투복과 전투복을 신고 있으면
정신도 각이 잡힌 듯 차분해진다. 나가는 날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원래 6시 기상인데, 그때 일어나면
준비하는데 다소 늦은 감이 있어서 불침번한테 10-20분 정도 먼저 깨워달라고 한 뒤 씻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오기 위해 샤워장 및 화장실이 분비는 시간을 그렇게 피한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당직사령한테 신고하고, 부대 차량을 통해 이곳에 도착하면 7시 전후.
중대내 아는 사람과 같이 나오면 지금은 편의점이 들어선 조그만 가게에서 소세지 및 음료수로 아침 허기를 채운다.
부대 PX에서도 충분히 사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밖에 나오면 민간인 코스프레를 하고 싶음인지
그것도 너무 맛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울진에서 오는 것들도 있었고, 더 위에서 오는 것도 있었는데
암튼 7번 버스를 운행하며 행선지가 포항터미널이다. 아는 사람과 나오면 늘상 가던 설렁탕집이 있다.
나는 일병인가, 이등병 때 바로 윗고참과 함께 여기까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형이 여기서 제일 비싼 꼬리곰탕을 사줬었다.
당시 12,000원인가 13,000원인가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적은 가격이 아니다. 그래도 그게 선후임간의 재미아니겠는가.
그 형은 인천사는 사람으로 군에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아주 살뜰하게 지내는 관계로 자리잡았다.
서울해장국집. 부대 복귀하기 전에 저녁을 먹었던 곳으로. 차량이 항상 많아 나름 맛집이었을텐데도
내가 선지해장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항상 맛이 별로였다.
그렇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부대를 떠날 때도 항상 여기서 시작했듯이 돌아올 때도
이 곳에 내려 부대를 향할 수 밖에 없다. 늦은 밤 부대를 향해 터벅터벅 들어갈 때면 쓸쓸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든다.
내가 군인인 이상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가야하고, 민간인이었던 나와 이별을 해야하는 아쉬움 있기 마련인데
이 장사정류장이 그 분기점인 것이다. 신데렐레가 12시 종치면 현실로 돌아가야 하듯이
나를 포함한 장새대대인들에게 이 정류소는 군인과 민간인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군인과 민간인의 분기점. 장사정류소
부대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걷자니 뭔가 또 새록새록하니 울컥울컥한다.
꿈에도 그리던 전역을 하고 이 곳을 벗어났는데, 10년만에 이 곳을 다시 오다니...
10년 사이에 나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도 바다는 그때랑 변함이 없는데.
처음하는 혹한기 훈련이었을거다. 이 바다를 제대로 본 시기가. 훈련 막바지에 우리 중대의 임무 특성상
레이더 기지 경계 증원에 나선다. 막날 야간행군을 하기 전에 각자 군장을 챙겨 산을 야트막한 산에 오른다.
200m 고지의 125레이더 기지에 오르면, 영덕군 남정면 일대의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야밤에 이 바다를 보며 힘든 훈련과 추위도 잊을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다. 바다 위에 달빛이 추욱 가라 앉아
빛의 끝이 해안선까지 다다르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달빛도 밝아 세상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가로등 때문에 감상 이외에는 달빛의 용도를 몰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니
달빛으로 인해 깜깜한 와중에 보일 것은 다 보였고, 왜 '무월광취약시기'라는 말이 군대에서 통용되는지 몸소 알게됐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그믐 전후를 무월광취약시기라 부르고 적의 침입을 대비해 이 시기에 경계 병력을 더 투입하고 시간을 늘린다.
그렇게 장사해수욕장 정확히는 동해 바다의 위용을 제대로 인지하고 나서, 나는 기회가 되면 이 바다를 바라봤다.
한 없이 뻗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냥 마음이 편안해 지고 시원했다.
답답한 군생활일지라도 그래도 그냥 바다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자연 앞에 사람이란 그렇게 작아지고 겸손해지나 보다. 바다가 검으면 검은대로,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맑개 갠 하늘에 상응하듯 짙푸른 바다면 파란대로 시시각각 그 얼굴을 달리했는데 그때마다 바다가 바다란 사실은 변함 없이
한결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나 상병 때 125R/S에서 찍은 사진. 언제봐도 시원하다. 거친 파도와 끝간데 없는 경계. 나만의 해우소.
박교수님은 나 학생 때 고흥을 내려가면 은퇴하고 나서 이곳에 펜션을 짓고 노후를 맞으리라 하셨다.
은퇴를 하신 지금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요원할 것 같은데
왜 그 당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사 조금 알 것 같다. 나 역시도 은퇴를 하고 나면 동해바다 이곳 어느쪽에 펜션사업을
하며 노후를 맞고 싶다. 아마... 그렇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거다. 하지만 그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꿈에서나 가능한 일임을,,, 그냥 미지의 아틀란티스임을,,,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임을 잘 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박교수님의 펜션 사업에 대해 믿질 않는다. 그냥 이따금 그 분이 예전 좋았던 일을, 혹은 그럼에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기 위해 사업 구상은 잘 되시냐고 물을 뿐이다.
옛날 사진. 추억 할 만한 것이 있따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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