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에 갈 때 시간이 남으면 좀 걷는다.
가끔 시간이 남을 때도 목적지 없이 걷는다.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걷는데, 걷다 보면 여유가 더 생긴다.
오늘도 시간이 좀 있어 걸었다. 종각역에서 남영역까지. 그리고 주안역에서 다시 집까지.
오늘 걸은 이유는 평소와 다르다.
공허해 걸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녀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그녀는 너무 이상적이다. 본인이 설정한 사랑이라는 '환상'에 내가 부합하지 않으니 그만하자고 한 것이다.
나도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저버리게 두지 않는다는 마인드라,,,
몇 번 말해보고 더 이상 붙잡진 않았다. 마음 떠난 사람 붙잡는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이미 체념은 했다.
이 것은 첫사랑과 헤어지면서 생긴 방어기제다.
떠나가는 사람을 잡으려 많은 노력을 했을 때 되면 좋지만, 안 되면 상처만 더 받는다.
그래서 언제가부터인가 나는 이별에 있어 진보주의 색채를 뗬다.
마치 쿨한듯, 자유연애주의자인듯,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자존감이 상처를 덜 받게 하려는 심리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거야 말로 자기기만이며 허위라는 것을.
애써 모른척한다고 해서 상처가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그녀에게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에 대해 얘기했다.
프쉬케가 에로스를 믿고 사랑 할 때는 그녀 사는 집이 호화 궁전에 화려한 장식품이 많았는데.
사랑이 끝나자 그것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폐허 속에 혼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라는 것
그게 사랑의 힘이라 했다. 현실은 누추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천국과도 같다라는 것을.
나는 프쉬케처럼 빈집에 방치 될 것이라고.
이별 하고 오는 길에,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떠나자, 홀로 남은 어머니가 계란 장수에게 하는 말.
"인제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머님. 이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회한과 여운이 있는지.
나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혼자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혼자있는 것과 친해져야 한다.
사랑이 올 때는 갑작스러웠지만, 이별은 더디고, 길게 갈 것이다.
한 동안 자주 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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