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5. 1. 17. 18:49


군 생활하면서도 부대 인근에서 회를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맛집은 모른다.

숙박과 식당을 겸하고, 우리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장사명품회 대게 전문점을 들어왔는데

관광지기 때문에 바가지가 신경 쓰인다. 메뉴판의 대게 가격을 보니, 싯가라고 쓰여있다.

회를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산지 대게를 먹을까 하는 마음에 대게를 고집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일반 대게는 마리당 7만원. 남자 3명이서 괜찮게 먹으려면 2마리.

배부르게 먹으려면 3마리는 먹어야 한단다. 3마리는 다소 오바인 것 같아서 2마리만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게를 고르러 갔는데, 크기와 생김세가 다른 놈들이 다소 있다. 주인장 아저씨가 박달대게라고

가르킨 놈들은 찝게발에 완장을 차고있으며, 크기도 실하고, 생긴 것도 상남자다

가격을 물어보니 마리당 15만원. 영덕대게도 맛있는데, 그 중 끝판왕이 박달대게라고 말한다. 

상술 같은 말투에 경계심이 들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먹어보랴 하는 아쉬움이 기어나온다.

일반 영덕대게와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보니, 확실히 맛이 다르다고 한다. 이거 먹으러 서울서 내려오고,

이거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일반 대게 못 먹는다고 말한다. 혹하는 마음에 작은 것은 없냐고 물어보니

아까 고른 놈들과 비슷한 놈들이 마리당 12만원이다. 7+12만원 짜리를 고를까 고민했지만, 

나의 욕식만 무작정 고집할 수는 없었다. 직장인인 나는 뭐 상관 없지만, 

집은 잘 살아도 당장의의 현금은 별로 없는 이 놈들에게는 그래도 큰 부담일 수 있었다.

아쉬움을 접고, 아까 그놈 2마리 주세요하고 가게로 들어선다.


화장실 다녀온 친구 한 명이 너무 비싼거 아니냐 살짝 타박했지만, 막상 맛을 보니 제일 맛있게 먹는다.

전에도 대게는 먹어 본 적이 있었지만, 그것들의 맛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담백하면서도 달달하고, 향도 오래가고... 우와 이게 대게고. 이래서 사람들이 대게대게 하는구나.

대게의 깊고 깊은 맛에 모두들 정신이 나갔다. 서울에서 먹으러 오는 이유가 있었고, 일반 대게도 이런데

박달대게는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시중의 나온 큰 게들은 다 숫놈이다. 암컷은 수종보호 때문에 어획이 금지 돼 있다.

박달대게는 울릉동 근처 심해에서 잡아오고, 대게의 제철은 겨울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연찮게

제철에 싱싱한 놈들을 먹으러 온 것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석화, 굴전, 오징어 무침 이런 것도 맛있지만,

역시 메뉴는 뭐니뭐니해도 게 기반의 요리다. 매운탕이며, 게 뚜겅을 활용한 볶음밥까지...

정말 맛있다는 말 이외에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추운 곳에서 떨다 들어와서 그런지 

더 맛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동의한 것은 1년에 한 번씩은 부모님 모시고 와야겠다. 이런 느낌!

그런데 막상 현실적으로 말 많으신 부모님들이 여기까지 불평불만 없이 오기란 힘들 것 같다는...ㅎㅎ


그렇게 둘째날도 본의 아니게 안주가 너무 좋아 술을 예상한 것보다 많이 마셨다.

방금 전의 사고도 있고 그래서 분위기가 많이 다운 됐었는데, 다들 사람이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아까 일은 언제 그랬냐는듯 웃고 떠들기 바쁘다.

술을 거나하게 먹고도 모잘라 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더 사왔다.

잘 먹고 잘 쉬고 있구나. 문득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왠지모를 웃음을 날린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15. 22:08


사람이 없어 횡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으니 흥도 가라 앉았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명승원 만두 집을 들어갔다.

예전에도 몇 번 왔었던 곳이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딱히 갈 만할 곳도 없었다.

뭔가 그저그런 술집들만 있어서 만두 전문점을 가는 게 덜 리스크하다 판단했다.

전문점이라 그런지 메뉴도 단촐하다. 만두국, 군만두, 왕만두, 물만두, 쫄면 대략 5-6가지 메뉴였다.

친구들은 추운지 만두국을 나는 쫄면을 그리고 양이 좀 모자랄 것 같아 군만두를 시켰다.

결과적으로 맛은 훌륭했다. 직접 피를 갈고, 만두소를 준비하던데 확실히 인스턴트에서 느낄 수 없던

군내, 고기의 그득함, 뭔가 말 할 수 없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다만, 쫄면만 빼고는.

쫄면의 고향. 인천에서 와서 그런지,,, 이 맛은 확실히 별로였다.


배를 채우고 그래도 못내 나는 아쉬워 포항역까지 거리를 좀 돌아갔다.

골목 구석구석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 무엇이 아련하고, 씁쓸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시간이란 놈은 미련보다 빠르다.

차를 사들고, 차를 세워둔 포항역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시장이 참석한 KTX 개통 기념 행사를 했지만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없다.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만이 빈 거리를 가른다. 


포항과 바다에 미련이 있었지만, 실망 한 점도 있고 내일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다음 일정은 최대한 많이 올라가야했다. 그게 맘 편할 것 같다. 마음은 아니 나만 생각한다면 월포, 화진, 장사나 강구

이쪽 중 한 곳에 묶고 싶었지만 한참 더 위인 울진을 행선지로 정했다. 오후 5시쯤 되니깐, 어둡다. 시골은 밤이 빠르다.

포항 시내를 벗어나자 급격히 빛이 없다. 그럼에도 이 곳 지리는 눈에 익다. 외박이나 휴가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 쯤 항상 이 길을 지나갔으니. 이등병 때 처음 전입하던 날이 기억난다.

대구 50사단에서 5주 간 훈련을 받고, 영천 122연대 본부에서 한 3일 대기하다가,,,

당시는 타중대 소대장이었지만, 내가 짬 먹었을 때는 나의 처부장, 인사장교였던 김성규 중위(당시는 소위였나?)가

이등병 찌끄래기 몇몇을 데리고 장사로 왔다. 겨울이었고, 밤이었고, 추웠다. 밖은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바다라는데, 소리만 얼핏 들릴 뿐 어둠과 분간할 수 없었다. 1과 1/4 트럭(군대에서 쓰는 소형 트럭인데, 5/4 트럭

이라고 쓰면 될 것을 왜 저렇게 표기하는지 모르겠고, 현역들 사이에는 다찌-왠지 dodge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론-

라고들 부르는데, 진짜 다찌 트럭과 비교해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어 좀 안 쓰러운 이름이다. ㅋㅋ)에 짐짝처럼 실려

정말 막연함만 있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전입하는 이등병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그 첫발을 내 딛는 시작에... 어떤 긍정적인,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랴,,, 자유가 속박된 것이 아직 뭔지도

모르는 그 얼떨떨함, 그야말로 체념에 의한 무념무상이 당시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시길래... 살짝 졸았다. 운전으로 고생하는 친구를 위해

예의상 그러면 안 된다고 잠을 깨려 노력했지만, 한 번 무거워진 눈꺼풀은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된다.

속수무책으로 고개는 떨어졌다, 올랐다를 반복하면서도 내심 기분은 아늑하고 좋은,,, 그렇지만 미안한

그런 감정이 지속되는 와중에 갑자기 옆에서 '아! 씨팔'하면서 쿵하는 소리가 나며 차가 흔들렸다.

조는 와중이었지만, 뭔가 심상찮음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바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순간 '아 친구도 졸았구나. 좆됐네. 무슨 차하고 부딪혔나보다. 꽉 잡아야지. 충격을 최소화해야지, 몸을 틀어야지'

1초 사이에 이런 생각들이 파바박 지나가고 바로 행동으로 나왔다. 그리고 2차 충동을 예상하고,

몸을 움츠렸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차는 아까와 같이 100km 속도 내외에서 운행중이다.

뭔가 싶었다?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말을 한다. '아 시팔 로드킬이였어. 새끼 고라니...'

아. 다행이구나. 새끼 고라니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안전하니... 안도의 한숨이나왔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아마 그 새끼 고라니는 바로 죽었을 것이다. 숨이 붙어 있었어도, 이 추운 날에

쉽게 그의 체온은 식어갔으리라. 그리고 집을 나간 새끼를 기다리는 어미 고라니는 밤을 세웠겠지.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는게... 정말 못 할 짓이다. 내가 벌레, 곤충은 많이

없애 봤지만 막상 고라니의 생명을 뺏는데 일조했다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입이 가슴이 무겁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문제가 생긴 좌측 하단 라이트를 점검했다. 핸드폰 불빛을 비춰 보니, 작살이 났다.

차도 이런데, 새끼 고라니는 어쨌을까 더 미안했다. 그리고 더는 지켜보지 못 했다. 그 어딘가에 피라도 있으면

어찌할까,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치사했다. 나는. 그렇게라도, 죄책감을 덜 가지려고 애썼으니.

일단 친구가 응급조치를 간단히 했다. 너덜너덜한 범퍼를 떼어내고, 푹 들어간 바퀴 위를 발로 차 다시

복원 시켰다. 육안으로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래도 뭐가 왠지 차가 기운다, 소리가 난다. 이런 말을 꺼낸다.

아마 단거리 운행이었으면 그냥 갔겠지만 남은 거리도 많고, 내일 일정도 고려하면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보험을 부르는 게 맘편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상담사와 통화해 보니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인근에 영업하는

카센터가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거기까지 고장난지, 멀쩡한지 모르는 차를 끌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우리를 끌고 올 차도 없다. 젠장. 주말에 지방에서 차 사고 난 사람들은 어찌하란 말인지...

보험이... 참... 불안한 마음에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차를 끌고갈 수는 없다고 판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렉카차 직원이 오면 상태를 점검해 달라고 하기로 했다. 

그들의 오랜 경력을 믿는 수 밖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포항시내에서 차가 오는데, 장사 해수욕장까지는

못해도 30분은 걸린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걸었다. 후후. 이렇게라도 여기를 보게되는구나.

얄궂은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제서야 친구들도 긴장이 풀린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고라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순간에 고라니 살리자고 핸들을 팍 꺽었다면 더 큰 사고가 났을거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들이받으라고 얘기한다더라. 말을 꺼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살생의

방조자인 나보다 당사자인 그가 더 큰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으리라. 그런 그에게 뭐라고 말도 못하고,

그냥 잘했다. 그래. 잘했어.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로드킬 상황 발생 시, 지역번호+120 을 통해 신고를

해야 2차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찬바람을 쐬며, 노가리를 까고 있는 사이 차는 왔다.


그리고 시범 운전을 이리저리, 요렇게 저렇게 해보더니 이상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타라고 한다.

이미 뭔가 어떤 흐름이 끊긴 시점이라, 나는 그냥 이렇게 된 마당에 여기서 저녁 먹고 자자고 했다.

사실 '이렇게 된 마당이'란 문맥에는 여행 일정을 변경해야 할 그 어떤 논리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쉽게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모르긴 몰라도 방금 사고로 인해 밤길 운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무의식중에 자리잡아 술이나 먹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는 길에 있었던, 숙박과 식사를 겸할 수 있는 식당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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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일상2015. 1. 5. 23:11


회사 규정 상, 승진을 위해 IM2 이상 성적이 필요했다.

이직 첫 해라, 조건 충족과 상관 없이 14-15년은 안 될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핑계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뤘다. 

2달여 학원을 다니고, 처음 본 시험에서 IH 등급을 맞았으니 성공적인 결과다. 


2달 공부한 것 치고 꾀나 만족스러운 성적


회사원이란 신분상, 야근이니, 회식이니... 열심히 하는데 한계가 있고 

연말이라 약속이 많았음을 고려해 봤을 때... 양적인 노력으로 얻은 것은 아닐테다.

그럼 무엇일까? 나 스스로 자문자답 하건데, 아마 평소 내 언어 사고력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가령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모든 스크립트를 다 외우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겠지만, 나는 문서를 구조화하고 각 시트마다 중요한 키워드들을

머릿 속에 피라미드(인과관계, 로직트리) 형태로 집어 넣은 다음에 그것을 외운 후 반복한다.

이는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매번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통째로 외웠을 때 보다 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으며, 특히 어떤 부분에서 막혔을 때

전체를 떠 올려 적절한 추가와 삭제 및 스킵이 가능해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탄력성과 안정감이란 장점이 있다.


오픽도 이러한 형태로 스크립트를 외웠다. 초기 인터뷰에서 특정 항목으로 그룹핑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그것에 최적화된 스크립트를 적었다. 물론 보정은 강사님이 해주셨다. 

토익 700점대의 문법과 표현력은 비루하기 때문이다.

그 분의 도움으로 나에게 맞는 자료들을 구비한 후 습득에 주력했다.

그리고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내가 외운 스크립트를 바탕으로 대답하려 연습했다. 

마치 셜록3에서 애플 도어에 들어가 기억을, 정보를 찾아 오듯이 

나 역시 추상적인 저장 공간에서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서치하고 제시했다.


그럼에도 실력이 워낙에 미천해, 2개의 돌발 문항에서 당황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각 방들을 묘사하고,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문제 중 하나를 언급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설명하시오.  


첫번째 문제에서 나는 현재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방을 묘사할 재료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나는 현재 원룸에 산다. 거기에는 단 한 개의 방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네 질문에 답하고 싶지만, 공유할 거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내 한 개의 방에서 모든 활동을 한다.

공부를 하고, 요리를 하고, 책도 보고, 잠도 자고... 이것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방에 대한 묘사다.

비록 짧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해해달라. 말하며 답변을 마쳤다.


솔직히 2번에 질문에서는 딱히 생각나는 사항이 없었다. 제안서를 쓰다가 진도가 더뎌 힘들었던 점,,,

직장 상사로 인해 힘들었던 점,,, 무엇하나 잘 말할 자신도 없었고, 얘기거리도 없었고,,,

말 해야 할 순간은 다가 오고,,, 젠장 뭐라고 답하지 하다가. 그냥 되도 않는 구라를 치기로 했다.

광고주가 나에게 요청한 건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받지 못했다. 이에 광고주가 자기는 분명히 보냈다 말하고

화를 내기 싲가했다. 나는 조금 더 꼼꼼히 이메일 리스트를 찾아봤고, 광고주의 요청건이 스펨메일함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충분히 잘 설명하고, 팀장님도 이러한 사항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향후 상호간의 문서 수발신에 누락이 없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업무에 활용했으며

광고주와 나는 그후 이러한 오해 없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


내용이야 뭐 이래저래 쓸데 없이 많아도 결국 위 대답은 "문제 - 문서누락, 솔루션 - 체크리스트"로 줄일 수 있다.

내가 위와 같이 뼈대를 잡고 구라를 칠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간 내가 작성했던 대부분의 제안서 골격이

문제와 솔루션을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문제와 솔루션 앞뒤로 살을 붙여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내가 평소 신문 사설과 오피니언 혹은 그 이외의 서적을 통해

체득한 문장 구성력, 추론력, 논리력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평소 모국어 학습이 외국어 학습에 도움 된 결과다.


그러나 모국어의 어떤 학습 능력이 외국어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건데 저것은 모국어 학습으로 대변되는 '언어적 사고력'이 아닐까 싶다.

글을 떠 올리고, 구성해, 논리를 점검하는 과정. 우리는 그것을 모국어란 수단을 활용해 하기 때문에

모국어 학습=언어적 사고력을 동일시 해왔고 그 결과 그 둘을 혼용해 쓰는 것은 아닐지.

모국어 학습은 원인 및 수단이고, 언어적 사고력은 결과 및 성과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구조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 나거나, 좀 뒤쳐진 사람을 제외한 경우다. 


모국어를 통해 언어적 사고능력을 키운 사람이

외국어 학습 시에도 비교적 수월할 것이다.가 오픽 시험을 보고 느낀 점이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4. 23:11


포항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가봤다. 혼자서 하는 첫 장거리 여행이었다.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찜질방에서 자고,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차가 포항역을 들어선다. 이 곳도 변했다. 쇠락한 듯한 인상이다.

당연히 10년이란 시간차가 있으니, 무엇이든 더 낡고, 색이 바래지길 마련인데.

그 속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것 같다. 설레임이 긴장감으로, 긴장감은 아쉬움으로 변한다.



사람이 없다. 한적한 거리. 왜 이렇게 됐을까? 궁금하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정지용 <고향>


아마 시인이 말한 것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기억 속의 고향과 사실인 고향간의 불일치. 그로인한 낯섬

그런데 이것은 욕심이다. 무엇이든 시간의 흐름에 변하는데, 고향만 그대로이길 바란다는 것이.

그럼에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다 왜 아쉬움을 느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 그 아쉬움의 기저에는 상실감이 있는 것 같다. 내 기억 속 아름다운 추억이 사라지는 듯한, 

더 이상은 회상하지 못할, 그런 기회가 사라질 것 같은...


번화가로 들어서니, 사람이 없다. 겨울 탓이기도 하지만, 몇몇 문 닫은 가게가 있는 걸로 보니

유동 인구자체가 줄은 듯 싶다. 예전에 주말에는 이 거리가 빽빽했는데, 왤케 사람이 없지?

인구 변동이 있나 싶어 포항시 인구 통계를 찾아 봤는데, 오히려 10년 전 대비 소폭 증가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3개. 새로운 번화가가 생겼거나, 젊은이들이 주말에는 대구로 간다거나

아니면 중장년층 인구는 늘었는데, 젊은 층 인구는 감소했을 경우. 

좀 더 찾아보기는 귀찮아...  다음에 이 지역 사람이 있으면 답을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패스


거리를 들어설수록, 특정 가게 앞을 지날 수록 추억들이 하.나.하.나. 재생된다.

영화관, 그때 봤던 영화, 그때 했던 얘기, 그때 먹었던 음식, 네가 짓던 표정,

네가 불러줬던 노래, 보내주었던 편지, 문자, 함께 했던 시간, 장소, 그 무엇이 됐든 떠오른다.

시네마 천국의 러브테마가 흘렀다면, 눈물이 났을거다. 



늘상 여기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4시 약속이라면, 3시 반부터 설레기 시작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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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2. 21. 00:19



전날 과음으로 11시쯤 일어났다. 

셋다 수영을 좋아하는 터라, 비싼 돈 주고 수영을 하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면 '수영'이라는 운동 보담 '호텔 수영장' 체험에 관심이 많았다.

이용료 각 2만원과 J와 D의 수영물품 대여료 각 8천원씩 도합 76,000원의 지출이 있었다.

12시에 들어가 충분히 수영하고, 좀 쉬고 3시에 나왔으니 본전은 뽑은 셈.


사우나는 수영을 하면 이용할 수 있게끔 붙어 있는데, 금호강변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수영장에는 총 4개 레인이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 계셨다. 조용하니, 우리끼리 놀기 좋았다.

그러던 중 나의 제안으로 각자 수영하는 폼을 영상으로 찍었다. 모든 운동이 자세도 무시할 수 없는데, 

물 속에서 하는 수영은 타 운동에 비해 내 폼을 보기가 힘들다.  

찍은 걸 보니 자유영은 그런대로, 접영에서 팔이 좀 이상한데, 셀프 진단과 교정이 가능해 좋은 것 같다.


시간이 애매해 따로국밥집은 패스하고, 바로 포항으로 넘어 갔다. 

대구에서 포항은 차로 1시간 거리. 이젠 새로 생겼다고 말하기도 뭐한 대구-포항 도로를 타면 금방이다.

군에 있을 때 나도 이 거리를 몇 번 곧잘 왔다갔다 했다. 그때는 진짜 생긴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운전병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당시 나는 짬 먹은 병사의 권리를 활용키 위해 코골이 수술을 받았다. 굳이 안 받아도 생활에 불편은 없었는데, 

이때 아니면 언제 무료로 하나 싶기도 하고 나름 뺑기질 부려도 뭐라할 선임이 없기에 기꺼이 수술을 받았다.

대구, 경북권 몸에 문제 있는 병사들이 모이는 곳이 대구통합병원인데, 수술 전 진료 및 검사 같은 것들을 받기 위해

군대용 앰뷸런스를 타고 여기를 왔다갔다 했다. 


출처 : 뉴데일리 12.01.18

윗 사진이 그 앰뷸런스인데 저기에 사람이 꽉 차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창도 없어 밖도 못 본다.

그럼에도, 기어코 나가려고 애썼다. 아련하고, 애틋하고, 안쓰러운 20대 내 젊은 날...


군인들에게는 사소한 행복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어디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 좋다라는 것이다. 

비록 그 시간이 짧고, 돌아갈 것이 명확함에도 잠깐이나마 일탈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느끼기 위해 감수해야 할 것이 좀 있는데, 그 중 첫번째는 불편이다. 

군대 차가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10년전만해도 구식이었다. 나 말고도 아픈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항상 차는 만원이라 

비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좁히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왔다갔다 2시간이면 삭신이 쑤신다. 병 떼러 갔다가 병 얻고 온 셈이다. 

그리고 외진에는 왔다갔다, 거기서 또 뭐 접수하고 기다리고 하루가 다 소요되는데 일반 전투중대원들은 눈치가 보이겠지만

나 같은 행정병들은 일이 쌓인다. 다녀와서 야근을 필히 한다. 그러고 보면 멘탈적으로도 이로울 게 없는 것인데도... 

그 잠깐의 일탈이 주는 행복감을 보고자,,, 참 건수만 있으면 나가려고 했던 모습이 안쓰럽고, 우끼기도 하고... 

이따금 선탑자 재량으로 중간 휴게소에서 한 번씩 쉬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로 1시간 거리인데 쉬는 게 좀 우끼기도 하다. 

선탑자도 군인이였고, 그도 일탈을 즐겼으리라. 그러면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사먹었는데, 막상 PX보다도 초코바며, 

음료수며 더 비쌌는데 무슨 허세로 그걸 사 먹었는지??? ㅋㅋㅋ 


창밖으로 청통휴게소가 보이니, 아련하게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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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2. 20. 21:40

 

출발은 분당이다. 4시에 퇴근해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인천서 온 친구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차에서 먹을 간식을 샀다.
최근에 문제가 된 마카다미아 땅콩도 구매했다. 먹어보니 왜 1등석 간식인지 알겠다.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혔다. 차가 없더라도 눈길은 그 자체가 부담이다.
출발 전 예상 시각은 7시 반이였으나, 도착하니 9시 반이다.

금호강을 끼고, 죽 늘어선 인터불고호텔 야경이 멋있다.
도시 촌놈들이라 5성급 호텔이란 이름만 듣고도 긴장했다.
하루에 35만원 짜리 방인데 돈 많은 사람들만 오겠지? 외제차만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훌륭한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했던가? 별5개는 거품이다.
수영장 2만원, 사우나 1만원으로 비용이 따로 들뿐더러,
객실 내 칫솔도 사야하고, 심지어 와이파이도 유료다.(시간 당 8천원인가?)
회사 혜택으로 3만 5천원에 묶어 큰 돈은 아니였지만, 그 돈 마저 아까웠다.
그 이외에 시설은 다 깨끗하고 좋았더라도 한 번 상한 빈정은 갈 때 까지 그대로였다.
 
짐을 대충 풀고, 동성로로 향했다. 가는 도중 기사님에게 현지 사정에 대해 물었다.
대구 경제는 어떤지, 가 볼만한 곳과 특징은 어떤지,
막창 집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음 날 해장은 해야하는지.

기사님은 전 시장이 너무 개인 택시 면허를 많이 풀어줘 먹고 살기 힘들다,
전 시장 한 게 나무 심은 것 빼고 하나도 없다, 새누리당 보고 뽑았는데 이거 안 된다.
이제 인물보고 해야지, 맨날 이러니 발전이 없다 했다.

잠은 모텔에서 자도 되는데,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다. 어느 곳은 뚜껑이 열려 별도 보인다.
(J와 D는 이 대목에서 대구 인터불고 '창렬'호텔이라 평했다.)
막창은 경산에서 먹으면 되고, 해장은 '교동따로'나 '대구따로'에서 하면 되는데,
둘다 동성로에 있으니 술 먹고 막차로 들리면 된다고 했다. 나름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
 
동성로는 군대 있을 때 선,후임들이 점프 뛰던 곳이다. 나에게도 몇 번 가자고 하였으나, 거절했다.
귀찮았다. 내 보직이 인사과 행정병이다 보니 위수지역을 벗어난다는 부담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휴가증 한 장 써서 소지하면 헌병들의 검문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한테는 임의로 끊어줬다.
나는 외박도 잘 안 나갔다. 여자 못 꼬셔서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걍 나갔어도 술 한잔 하는 게 전부였다.

그때 동성로에 대해 들었던 얘기가 대구의 명동이라는 것이다. 근데 가보니 명동보다는 넓다.
커서 그런지 사람이 듬성듬성 했지만, 여자들은 이뻤다.
나중에 대구 '현지' 출신 친구도 하는 말이, 본판은 대구 여자가 서울 여자보다 낫다 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둘러보고 다시 택시를 탔다. 기사님에게 막창골목 가주세요라고 했더니. 어데요?라고 되묻는다.
잘 못 들으셨나 싶어 막창골목이요라고 말하니 다시 되묻는다. 그러니깐, 어느 막창골목이요?
이쯤에서 살짝 당황했다. 엥? 막창골목이면 막창골목이지, 어디긴??? 유명한데 있잖아요.라고 말해도
유명한게 한 두개가 아니라하면서 어디로 갈지 묻는다.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내가 언제 와봤나? 대구를 ㅎㅎ
차는 출발했고 검색하기에도 늦은 상황이라 기사님과 대화를 시도했다. 괜찮은 막창집(가격, 여기서 거리, 맛)에
대해 물었더니 경북대 앞 괜찮다며 안내를 해주신다. 그래. 이런게 임기응변이지 이러며 예정에 없던 경북대로 향했다.

가는 도중 경북대에 대해 물었다. 경북대의 학업 수준은 어떤지, 경내는 얼마나 큰지, 막창집은 어떤지.
경북대는 반에서 1,2등 하는 친구들이 가는 학교라 했다. 특히 의대는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싹 다 가는 곳이다.
그 다음에 영남대, 계명대 수준이라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소 놀랐다. 내 군대 바로 밑 후임이 경북대 법대 출신인데
고문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경북대는 그 '싼도'라는 녀석 때문에 약간 허명있는 학교라 여겼는데,
기사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구, 경북 제일 명문대다. 실제로 다음 날 호텔에서 지역신문(매일신문, 영남일보)을 봤는데, 
경북대 예상 수능 배치표가 있었다.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가 대구교대 보다 10점 정도 높았으니 정말 높은 학교긴 하다.

막창 골목에서 내려 제일 사람 많고, 깔끔한 곳으로 갔다. 기본이 3인분이라 일반 2, 매운거 1인분을 시켰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막창은 그닥이다. 잘 안 익고, 표식도 안 나기 때문이다. 식탐에 조급했지만, 별 수 없다.
1차를 끝내니 대략 술이 올랐다. 걷자 해 경북개 교대로 들어갔다. 아까 그 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학교를 도는데
1시간 반 걸린다하여 캠퍼스 투어는 못 하고 걍 자판기 커피나 한 잔 하자했다. 아직 시험기란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경북대가 공부를 잘 하는 학교라 그런지, 확실히 동성로 여자들이 이뻤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2. 20. 19:38


술 먹다 갑자기 나온 얘기다.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

J와 D는 시간에, 나는 예산에 비교적 여유가 있다.

그들이 나를 배려해줘 일정에 대한 권한을 내게 넘겼다.


갑자기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이건 나름 중요한 문제다.

막상 기회가 생겼는데, 그리던 곳이 없어 그 어디라도 좋다라고 해보자.

얼마나 우울하겠는가? 그에게 여행은 끝이 명확한 잠깐의 해방일 뿐이다.


나는 동해가 보고 싶었다.

서해가 내 유년의 모태라면, 동해는 청춘의 요람이다.


10년 전, 경북 영덕 장사리에서 군생활을 했다.

사계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흐리든 맑든, 바다에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안다. 왜 최남선 시인이 海에게서 소년에게와 같은 시를 남겼는지,

고은 시인이 동해는 예술이고, 서해는 인생이라고 했는지를.


20대의 요동이 끝나고, 30대의 안정에 들어섰기 때문일까?

잠깐이라도 그 옛날 나를 보고 싶었다.



05년, 그 어느 날의 장사해수욕장

14년 12월 14일(일) 장사해수욕장

저 소년은 어엿한 청년이 됐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바다는 말이 없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일상2014. 12. 11. 17:45



출처 : BBC



미국에서 흑인 강제진압에 반대하는 데모를 한다.

도로 위 몇몇 시민들은 시위로 불편을 겪었을텐데도 차가 막히자 아예 하차 해 데모에 동참한다.


좋은 일에 많은 시민이 동참하는 모습이 뭉클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라는 의심을 지을 수 없다.

나였어도 차에서 내려 시위에 참여했을까? 예전의 나라면 기꺼이 안 했다.


내가 표방하는 공적 가치나, 정치적 소신이 옳더라도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현실적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매번 무위로 그치는 시위의 한계로 머리로만 공감 할 뿐, 행동하지는 않았다. 해도 안 될 텐데라는 패배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좋은 취지의 집회 현장을 보고도 시위의 무용성이란 면죄부를 주고 자리를 떴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부를 하거나, 공부를 해서 위정자가 되는 게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일텐데... 무심코 지나쳤다. 


그런데 여전히 효율에서 자유롭진 않지만, 최근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며 위 생각이 좀 바꼈다.

내가 너무 시위를 문제 해결 프레임으로만 본 것 같다.

문제 해결 관점이라면, 시위는 원래 비효율적이다. 대의 민주제에서 시민의 정치적 행위는 일정 선을 넘어가면 한계가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다. 백날 소리치고, 뒤집고 해도 어차피 안 된다. 시위는 무용론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시위를 해결책이란 프레임 대신 정치 참여수단 중 하나로 보게 되면

성과 정도가 아닌 참여 여부가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즉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얼만큼 얻어 냈냐가 아니라,

하고 싶을 말을 하고 싶을 때 했냐 안했냐 우리나라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없냐가 새로운 가치 척도가 된다.

결과 보다는 과정 중심이 된다.


시위는 프레임을 떠나서도, 시민의 정치 참여란 측면에서 이미 중요하다.

시위란 참여자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법위 테두리에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투표가 정해진 날에만 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소극적 장치라면

시위는 언제고 내 할 말을 하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 행위의 결정체다.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나라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여기서도 효율은 참여 다음이다. 


나 스스로 모든 행위를 효율로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다 보니

그것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에도 무심코 모르고 지나쳤던 것 같다.

광화문에 볼 일 있어 집회 현장을 보게 되면, 나름 민주시민 코스프레 좀 해야겠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독서일기2014. 11. 19. 00:46



두 책의 공통점은 저자가 모두 참여정부 출신이란 점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 측근이다. 책을 읽은 배경이다.

기록은 올 봄에, 대통령의 글쓰기는 최근에 봤다.

전자는 정치적 행적을 ,후자는 연설문을 통해 그분을 담아낸다.

(출판 시점은 대통령의 글쓰기가 14년 2월, 기록이 14년 4월이다.)

 

 

올 6월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 임기 시절에 난 20대 초였다. 정치를 몰랐다.

탄핵,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대연정으로 시끄러울 때,

전후 사정 및 정파간 이해 관계에 관심 없었다.

친구들과 놀고 알바하기에 바빴으니깐.

다만 이따금 뉴스에서 착한사람처럼 보이는 그를 지지했다.

논리와 근거는 없었다. 그냥 믿었다. 직감이었다. 


그 분이 퇴임 후 곤경에 처했을 때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실망했다. 

속았다 느꼈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단했다.

그 때도 나는 알바와 학과 공부로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았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잃고 나서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던가.

그 후로 시작됐다. 그 분에 대한 깊이 알기는.

 

유투브에 있는 동영상, 측근의 인터뷰 기사와 출판 기념회,

봉하마을, 사람사는 세상, 그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며 그를 만났다.

그리고 알았다. 애초의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었음을.

때 늦은 만남이 안타깝지만, 

그분과 동시대 사람이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시작)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끝)


김대중 대통령이 쓴 노 대통령 추모사 중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일상2014. 11. 9. 21:46


본부 내 신입사원이 최신 업계 뉴스를 모니터링해줬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멜로 본부 회신을 했다.



안녕하세요. 권남형입니다.

OO님이 주신 뉴스 보고 삐딱한 생각이 좀 들어 메일 드립니다. ^^

 

뉴스클립 공통 1-2,,,

From 빅데이터, To 스마트 데이터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빅데이터 열풍이 작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스마트 데이터란 말이 나왔네요.

변화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과 함께,,, 스마트 데이터의 실효성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 데이터만 있으면 되나??? 스마트 데이터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나???

 

비슷한 맥락에서 나이키 운동화와 골프용품 카피가 생각났습니다.

이 운동화를 신고 달리면 좀 더 빠르다, 이 공과 골프채를 쓰면,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기능성을 넘어 성과를 보장하는 문구입니다.

 

사실 운동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발, 골프채 등의 도구보다, 선천적, 후천적 운동신경 아닐까요?

기초 체력, 순간 스피드, 근지구력 등 말이죠.

극단적 비유지만, 호날두가 실내화 신고 축구해도 웬만한 프로보다 잘 하지 않을까요?

 

물론 선수간 운동 신경이 비슷하다면, 도구도 결과에 영향을 미치긴 하겠죠.

하지만, 위의 경우에는 너무 전자 쪽에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운동 신경을 키우라는 말은 싹 빼두고, 이것만 쓰면 좋아진다 말하는 격이죠.

이건 주객이 전도된 선동이고, 다소 과한 구라입니다.

 

다음소프트란 업체가 Data 분석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항간에 빅데이터 실효성에 사람들이 의심하자, 위기의식을 느껴

Data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데이터의 기준을 기존의 빅(BIG, 양적)에서 스마트(SMART, 질적)로 말이죠.

 

물론 업계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가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다음소프트란 업체가 아쉬운 게

직업적 양심에 비추어, 너무 약 파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가공된 Data의 중요성 만큼이나, 이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의 중요성도 균형 있게 언급했어야 된다고 봅니다.

약사가 조제 시, 환자에게 해당 약에 대한 효능 만큼이나 부작용도 같이 언급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Data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문제의식'이라고 봅니다.

Data Data 그 자체로써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태생 자체도 남을 설득시키기 위한 보조 수단적 성격이 강하며,

화자가 던진 명제를 증명할 때에 비로소 존재 가치가 있는 거죠.

여기서 명제 구성력, 즉 상대방이 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어젠다가 뭐냐는 등의

화두를 던지는, 판을 짜는 능력이 제가 정의하는 문제의식입니다.

 

그것이 선행돼야 빅이든, 스마트든, 포스트 스마트든…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명확해 질수록,

내게 필요한 Data가 무엇이고, 좋고 나쁜 Data를 거르는 능력, 찾아보고 없으면 만드는 등의

Data 압박 및 의존도에서 여유로워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와 관련된 유사 사례 전달 드리며, 인사 드립니다.

지루하셨을 텐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

 

"먼저, 하고 싶은 얘기를 서너 개 정한다....(중략)

이러한 명제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거기에 쓰일 수치, 사례를 찾는다...(중략)

백지에 명제들을 툭툭 던져놓고 명제와 명제 사이의 공간을 채워가는 식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그 시간에 난 관찰해 삶과 주변인물 //  그리고 발견해 심장에 꽂히는 비유 //  그게 매일 니 머리에 내가 맴도는 이유"

치명적인 비음, 개코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