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5. 6. 9. 23:48

 

주인공은 악마와 거래한다.

해가 지기 전까지 다녀 온 만큼의 땅을 받기로.

땅을 갖고 싶은 마음에 주인공은 너무 멀리 갔다.

해 질 때 쯤 돌아온 주인공은 힘들어서 죽고 만다.

 

과욕금물이 주제 같다.

적당히 소작할 만큼만 얻고 해지기 전에 돌아 왔으면,,,

땅도 갖고 죽지도 않고 평생 부자로 살았겠지.

 

그런데, 주인공이 너무 멀리 갔음을 깨닫고 되돌아 갔다면 행복했을까?

혹시나 가진 것 보다 두고 온, 갖지 못한 땅을 생각하며 후회하지는 않을까?

내가 조금만 더 최선을 다 했다면 지금보다 많이 가졌을텐데 아쉬워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주인공에겐 되도록 많은 땅이,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땅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요즘 나는 주인공과 매우 흡사한 삶의 패턴을 보인다.

가질 수 있는 선택지를 갖지 아니하고, 다른 대안을 계속 찾아 헤매는 나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인가?

주인공처럼 최대한 많은 선택지가 필요한가?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반추해 봤을 때 그렇지 않다.

나는 더 많은 땅을 가지려는 욕심이 없다.

다만 내가 갖고 싶은, 앉아서 쉬고 싶은 땅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이다. 

바라건대, 보습대일 땅이라도,,,

내가 바라는 땅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집 짓고 살 것 같다.

찾지 못했기에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뿐이다.

 

여기서 질문은 내가 바라는 땅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는가와 그것의 존재 여부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고 이쯤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의 나는 나 스스로 선택을 보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그럼 그건 내 선택인가? 타인의 선택인가?

 

아마 나는 기한을 정해놓고 선택을 할 것이다.

나름의 타협책을.

이 정도 했으면 됐다고 위안하며 내 선택을 합리화 할 것이다.

 

그전에, 후회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땅을 찾았으면 좋겠다.

 

 

 

.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30. 00:56

 

지도의 큰 길만 보고 대충 한 바퀴 돌아야지 생각했다.
이미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들이 마드리는 별로 볼 게 없다고 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나는 그냥 마냥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금을 즐기러
곳곳에 있는데 왜 볼 게 없다고 했을까? 아마 그들이 말한 것은 랜드마크, 혹은 별점이 매겨진
뷰 리스트 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에 대한 정의와 본인이 선호하는 스탈일이 달라서 그렇겠지.

 

 고흐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풍경

 

술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니, 고흐가 그린 "아를르,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생각났다.
유럽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나와서 밥 먹는구나. 날이 좋으니 그럴만 한데, 겨울에는 어떨까?
이럴려면,,, 우선 인도가 잘 깔려 있어야 하고,,, 차 다니는데서 밥 먹을 수 없으니깐,,,
그리고 가게 주인도 좌판 깔 영역을 행인들에게 피해주지 않을만큼 적당히 깔아야 하며,
앞 집이 더 장사 잘 된다고, 좌판 까는 게 불법이라고 신고하지 않는 상인들간 신뢰 시스템이
형성되야 하며,,, 손님들도 길거리에다 음식물 지저분하게 던지지 않는  매너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저런 '외식' 시스템이 우리나라에서도 잘 작동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당연히 아니다 싶었다.

솔광장을 지나 대성당에 이르렀다. 밤이라 건물만 보고 오려했는데, 불빛이 환하다.
소리도 시끄럽다. 11시를 넘기 이 시간에? 뭔일일까 싶어, 행랑객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성당을 향한다.
굳게 닫혔을 줄 알았던 문은 환히 열려있고 그 안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듣던 찬송가는 아닐지라도,,, 이 지역 느낌나는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장관인가 싶어 넋이 나갔다. 천주교 미사 한 번 드려보지 않은 내가 스페인까지 와서???
그것도 대규모 미사가 눈 앞에서 벌어지다니...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의식이지만
미안하게도 관광객인 나의 눈에는 신기한 체험이요, 세속적인 표현으로는 다신 없을 구경거리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 누군가의 신성한 의식을
개인적 경험을 위해 망치면 쓰겠는가. 오오 순간순간 처음하는 경험이 신비로울지라도,,,
경건한 의식에 자연스레 사제의 권위가 느껴지지만 없던 신앙심까지 생기진 않는다.
언어도 안 통하는 내가 그들의 노래와 설교를 듣는다해서 무슨 깨달음을 얻겠는가.
다만,,, 이 시간까지 이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성당에 나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대지식인 이어령 선생님도 자식이 병을 얻고서야 종교에 귀의했다.
신이 없다고 말한 리처드 도킨스의 가족들일지라도,,, 심지어 도킨스 당사자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리면 그제서야 하느님의 바짓가랭이라도 잡고 싶지 않겠나?
근황이 무탈한 나는 아직 종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필요없다.
그때 가서 내가 할 수 없는 게 없음을 느껴 좌절하고, 지금의 나의 오만방자함을 뉘우칠지라도,,,
나중을 위해 억지로 믿지도 않는 성령을 받아들이고 믿는 그런 위선이 절대자가 보기엔 더 괘씸하지 않을까?

 

가는 길에 가로등 주황색 불빛에 반사된 왕궁을 바라보았다. 왕정제라는 정치적 유산 보다 현재와 오늘을 잇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 잘 보존 돼 있음에 부러움을 느낀다. 가는 길이 복잡해 프라도 미술관 근처까지 갔다가
도보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자존심을 접고 전철을 탔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23. 15:41

 

 

스페인 전철은 출입문에 대한 통제권이 기관사가 아닌 탑승객에 있다.
처음에는 사용 방법을 몰라 당황해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신식과 구식이 있고, 신식은 버튼식이고 구식은 레버를 직접 올려야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자동차 창문을 여는 방식처럼 이해하면 되겠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예전에 전철타고 다닐 때가 생각났다.
한 겨울에 내리는 사람도 없는데 정거장이라 멈추고 문이 열리고 닫히니 매우 추웠다.
그때 생각했던 방안이 스페인 시스템 같은 거였는데, 실제로 보니 좀 신기했다.

만약 출입문에 대한 통제권이 승객에게 있다면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비 감소는 물론이며
불필요한 문이 열리지 않는데에 대한 전기세, 그리고 기관사 수고의 노력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재난과 같은 사고 발생 시, 보다 쉽게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그랬다면 기관사가 문을 닫아 놓고 탈출해 대형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같은
사건은 없었겠지.

물론 이에 따른 단점도 있을 것 같다. 통제권에 대한 권한을 승객에게 이양함으로써,,,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할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은 순전히 승객이지겠지.
이래서 우리나라는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기관사라는 훈련 받은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 같다.

뭐 개인의 책임성 제고 및 효율을 고려한다면 전자가 맞겠지만,,, 안전 측면에서 후자가 맞는 것 같다.
다만 후자의 경우 대구 지하철 사고에서 보듯이 전문가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그 사회 구성원 혹은 문화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사소해 보이는 출입문 개폐형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항역에서 10호선을 타려고 했으나,,, 이놈의 어리버리 때문에 6호선을 탔다.
그래도, 튜리뷰날역에서 원래 타려고했던 6호선을 타고 목적지인 안톤 마르티나에 내렸다.
지도를 꺼내 루카스의 집을 찾으려 했으나 막상 매치가 잘 안 됐다. 도로명 표시 및 번지수가 잘 안 나와 있다.
어찌어찌해 번지수가 문 위에 숫자라는 걸 알고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집이라, 한국인 손님이 많았다. 나의 아래 침대를 쓰는 남자가 혼자 오셨냐며 말을 건다.
그 후 약 10여분간 대화를 지속했는데, 혼자 여행이 목적인 나라,,, 말을 끊고 나갈 채비를 한다.
주인 아주머니께 혹시나 치안에 대한 수준을 묻고, 안전하다는 얘길 들어 맘편히 나간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고 분주하다. 더불어 나도 들뜬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23. 14:12

 

여행 첫날, 마드리드 입성

한국에서 스페인가는 비행기는 대부분 경유다.
국적기 직항도 있는 것 같으나,,, 비싼 거는 자세히 안 봐 모르겠다.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약 15시간 걸려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핀란드 공항 라운지에서. 북쪽이라 그런지 5월임에도 사람들 옷이 두텁다.
아시아인들의 유입이 많은지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표지판이 곳곳에 있다. 새삼스럽게 아시아 경제의 성장을 느낀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국제공항은 '글로벌'해야 한다.  
영어와 해당국 언어를 모를지라도, 출,입국 수속과 환승에 불편이 없어야 한다.
실제 내가 접한 공항수들이 그랬고, 들고 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마드리드에서는 처음으로 길어 서울로 돌아갈 뻔했다.

마드리드 공항은 인천 공항과 달리 출,입국 영역에 명확한 경계가 없다.
그리고 공항 내 표지판에 영어가 적어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은 분명 헷갈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비행기서 내려 출구를 찾아 이동하다,,,
짐이 없는 나는 캐리어를 찾을 필요가 없어서, 그곳을 경유할 필요가 없었고
내 앞에서 가고 있는 짐 없는 몇 무리 일행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사람이 적었다.
약간 불안했지만, 나 말고도 여러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애써 침착하려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여권을 보여주려 출국을 하려하는데, 수속원이 말을 건다.

"where are you going?"
"madrid~!"

"madrid???"
"yes. im going to madrid downtown."

수속원 직원이 약간은 당황한 듯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은 서울행이라고 한다. 엥? 뭔 서울행??? 그제서야 모든 게 좀 이해됐다.
짐 찾는 곳을 경계로 그 곳에서 직진했으면, 바로 출구로 나가는 곳이고
나처럼 어리버리, 우왕좌왕해서 옆으로 튼 사람들은 다시 출국 영역에 이른다.

그는 Salida라는 말이 Exit 임을 알려줬고, 친절히 앉아 있던 자리에서 나와
나에게 가는 길을 알려줬다.

여행 시작과 동시에,,, 하나의 미션을 만났고, 친절한 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클리어했다.            
그래. 여기는 스페인이지. 무엇하나 쉬운 거 없는,,, 밥도 하나 제대로 못 시키는 나는
여기서 유아와 다를 바 없다. 각성 수준을 올리며 전철을 타러 이동한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여행, 마드리드의 밤풍경2  (0) 2015.05.30
스페인 여행, 마드리드의 밤풍경1  (0) 2015.05.23
스페인 여행의 시작, 카잔차키스  (0) 2015.05.23
장사해수욕장을 거닐며.  (0) 2015.01.17
영덕대게 만찬  (0) 2015.01.17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23. 12:48

 

스페인 여행의 시작은 카잔차키스다.
13년, 외대 신정환 교수님이 들려준 스페인 여행기 감상문이 인상 깊었다.

스페인은 다양한 문명이 맞닿아있는 교착점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해양과 대륙, 기도교와 이슬람...
다양한 요소들이 만나고 만난 결과가 스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과 이슬람인들에게 스페인인은 익숙하면서 새롭다.

이러한 내용에 이끌려 스페인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궁금함이 생겼다. 그렇게 뒤섞인 스페인 문화는 무엇일지.
10여일 여행을 다녀온 지금, 카잔차키스가 말한 저 의미를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유럽과 아프리카 문명, 해양과 대륙 기질,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숙지한 다음
그것이 어떻게 스페인 문화에 반영되고 발전 됐는지, 스페인 문화와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
비교 분석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화두를 품고 시작한 여행에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단편적일지라도 나만의 스페인을 만났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에 것들에 대해 차차 공부하면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

이아손이 금양모피를 찾기 위해 흑해로 나아갔듯,,,
나도 나만의 금양모피를 얻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여행, 마드리드의 밤풍경1  (0) 2015.05.23
스페인 여행, 마드리드 공항에서 길을 잃다.  (0) 2015.05.23
장사해수욕장을 거닐며.  (0) 2015.01.17
영덕대게 만찬  (0) 2015.01.17
포항을 떠나고, 로드킬  (0) 2015.01.15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일상2015. 4. 27. 22:26

 

기형도, 엄마 생각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독서일기2015. 2. 15. 23:10


성철스님을 모셨던 상좌스님 얘기다.

가야산 호랑이라 불릴 정도로 엄하게 교육하신 일화나

일상에서 아이들을 사랑하셨던 모습, 종단의 지도자로써 솔선수범하신 내역들...

인간, 수도자, 지도자로써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성철 스님은 세상뿐만 아니라 불교 안 에서도 변두리에 계셨는데,,,

세속에서나 종단에서 왜 이렇게 유명하실까? 이런 궁금증이 내심 있었다.

책 속에는 조선 시대 이후로 배척 돼 일제 시대 들어 완전히 망가진 한국 불교의

전통을 살리려는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의 노력이 나온다.

그러니 성철 스님은 당대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자

전통이 끊기고 기강이 무너진 한국 불교의 재건을 이룩한 지도자인 것이다.  

 

워낙에 훌륭하신 분이라 할 말이 많겠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원택 스님의 필력도 좋아 쉽게 술술 읽힌다.

 

예전에도 본 적 있었지만, 이번에 큰 깨달음을 얻은 문구.

자기를 바로봅시다. 1982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삼서근이라 답한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독서일기2015. 2. 1. 22:36


저자의 이름부터 특이하다. 육명심... 수호지 노지심처럼 이름에서 불교가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스님이었던 분이고, 불교 교리에 기반한 작명이다.

경향신문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았고, 바로 책 2권을 사서 읽었다.

사진반 텍스트반이라, 2권이긴 하지만 쉽게 봤다.


저자의 예술 철학에 대해 얘기한 부분이 인상깊다.

사진 역사를 공부한 것은 그것들을 피해 자기의 독특한 사진세계를 구축하기 위함이고,

예술이란 결국 청중 및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고,

그런 면을 추구하기 위해 본인도 사람들에게 '이것은 뭐지?'란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찍었다 한다.


그가 사진의 주제로 선택한 분야는 사라져 가는 한국적인 것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 듯,,,  백민에서의 할머니 무당이 인상 깊다.


차후에 사진을 찍을 때,,,

셔터를 누르기 전,,, 한 번은 더 생각하고 찍을 것 같다.

이것은 뭐지? 이렇게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 사람들이 궁금해할까? 이것은 새로울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등등...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독서일기2015. 2. 1. 22:23


나는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다. 학부 때 복수전공을 하고, 한국사자격증도 따고, 이따금 관련 서적도 본다.

이런 내게 몇몇 사람들은 역사 공부한 것을 어디에 쓰냐고 묻는다.

예전에 나는 어떻게든 그럴듯한 답변을 하려 노력했다.

역사라는 것은 복합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결과로 귀결 되는데

이 앞뒤 관계를 유추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하는데서 논리적 사고를 연습할 수 있으며

이미 있었던 일들을 사전에 학습함으로써 내가 살아가는데 똑같은 일들을 겪으면

미리 알고 예방함에 있어 시간이 절약된다는 등의 몇몇 논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저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아예 대답을 안 할 것이다.


"그냥 심심해서 하는거야."


사실 저 질문은 전제가 잘 못 됐다. 효용, 돈이란 반대급부를 미리 깔고 얘기하는 것이다.

취업에 잘 된다느니, 고과반영에 좋다느니, 업무능력 향상과 연결된다느니,,,

이런 답변을 예상하고 하는 것이겠찌만, 적어도 내가 한 역사 공부는 이런 것들과 하등 상관 없다.

워낙에 세상 살기가 팍팍해서 그런 것이어서 그렇겠지. 때 아닌 인문학 열풍도 있고.

그래서 애초에 도움(돈)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사를 조금 알게 되면 부자는 될 수 없지만, 가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책의 한 표현을 빌리자면 아래와 같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현대사를 알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살아가는데, 내 철학이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지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면에서 "나의 한국현대사"는 분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고 집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쉽게 풀어준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몇 있는데, 보수와 진보의 역사 대립을 얘기하며,,,

"단순히 과거의 사실에 대한 인식과 견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비난일 수 있다."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책이 두꺼워 분량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내용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읽힌다.

이 또한 저자의 필력 아니겠는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17. 23:39



방이 따수워 잠을 잘 잤다. 너무 후끈한 나머지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 좀 걸었다. 장사 해수욕장을 비롯 길 건너 정류소 일대를 걸었다.

군대에서 외박이나, 휴가를 나갈 때면 항상 이곳에 왔다. 전날 잘 다려 놓은 전투복과 전투복을 신고 있으면

정신도 각이 잡힌 듯 차분해진다. 나가는 날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원래 6시 기상인데, 그때 일어나면

준비하는데 다소 늦은 감이 있어서 불침번한테 10-20분 정도 먼저 깨워달라고 한 뒤 씻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오기 위해 샤워장 및 화장실이 분비는 시간을 그렇게 피한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당직사령한테 신고하고, 부대 차량을 통해 이곳에 도착하면 7시 전후.

중대내 아는 사람과 같이 나오면 지금은 편의점이 들어선 조그만 가게에서 소세지 및 음료수로 아침 허기를 채운다.

부대 PX에서도 충분히 사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밖에 나오면 민간인 코스프레를 하고 싶음인지

그것도 너무 맛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울진에서 오는 것들도 있었고, 더 위에서 오는 것도 있었는데

암튼 7번 버스를 운행하며 행선지가 포항터미널이다. 아는 사람과 나오면 늘상 가던 설렁탕집이 있다.

나는 일병인가, 이등병 때 바로 윗고참과 함께 여기까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형이 여기서 제일 비싼 꼬리곰탕을 사줬었다.

당시 12,000원인가 13,000원인가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적은 가격이 아니다. 그래도 그게 선후임간의 재미아니겠는가.

그 형은 인천사는 사람으로 군에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아주 살뜰하게 지내는 관계로 자리잡았다.


서울해장국집. 부대 복귀하기 전에 저녁을 먹었던 곳으로. 차량이 항상 많아 나름 맛집이었을텐데도

내가 선지해장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항상 맛이 별로였다. 


그렇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부대를 떠날 때도 항상 여기서 시작했듯이 돌아올 때도

이 곳에 내려 부대를 향할 수 밖에 없다. 늦은 밤 부대를 향해 터벅터벅 들어갈 때면 쓸쓸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든다.

내가 군인인 이상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가야하고, 민간인이었던 나와 이별을 해야하는 아쉬움 있기 마련인데

이 장사정류장이 그 분기점인 것이다. 신데렐레가 12시 종치면 현실로 돌아가야 하듯이

나를 포함한 장새대대인들에게 이 정류소는 군인과 민간인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군인과 민간인의 분기점. 장사정류소


부대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걷자니 뭔가 또 새록새록하니 울컥울컥한다.

꿈에도 그리던 전역을 하고 이 곳을 벗어났는데, 10년만에 이 곳을 다시 오다니...

10년 사이에 나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도 바다는 그때랑 변함이 없는데.

 

처음하는 혹한기 훈련이었을거다. 이 바다를 제대로 본 시기가. 훈련 막바지에 우리 중대의 임무 특성상

레이더 기지 경계 증원에 나선다. 막날 야간행군을 하기 전에 각자 군장을 챙겨 산을 야트막한 산에 오른다.

200m 고지의 125레이더 기지에 오르면, 영덕군 남정면 일대의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야밤에 이 바다를 보며 힘든 훈련과 추위도 잊을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다. 바다 위에 달빛이 추욱 가라 앉아

빛의 끝이 해안선까지 다다르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달빛도 밝아 세상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가로등 때문에 감상 이외에는 달빛의 용도를 몰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니

달빛으로 인해 깜깜한 와중에 보일 것은 다 보였고, 왜 '무월광취약시기'라는 말이 군대에서 통용되는지 몸소 알게됐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그믐 전후를 무월광취약시기라 부르고 적의 침입을 대비해 이 시기에 경계 병력을 더 투입하고 시간을 늘린다.


그렇게 장사해수욕장 정확히는 동해 바다의 위용을 제대로 인지하고 나서, 나는 기회가 되면 이 바다를 바라봤다.

한 없이 뻗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냥 마음이 편안해 지고 시원했다.

답답한 군생활일지라도 그래도 그냥 바다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자연 앞에 사람이란 그렇게 작아지고 겸손해지나 보다. 바다가 검으면 검은대로,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맑개 갠 하늘에 상응하듯 짙푸른 바다면 파란대로 시시각각 그 얼굴을 달리했는데 그때마다 바다가 바다란 사실은 변함 없이

한결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나 상병 때 125R/S에서 찍은 사진. 언제봐도 시원하다. 거친 파도와 끝간데 없는 경계. 나만의 해우소.


박교수님은 나 학생 때 고흥을 내려가면 은퇴하고 나서 이곳에 펜션을 짓고 노후를 맞으리라 하셨다.

은퇴를 하신 지금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요원할 것 같은데

왜 그 당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사 조금 알 것 같다. 나 역시도 은퇴를 하고 나면 동해바다 이곳 어느쪽에 펜션사업을

하며 노후를 맞고 싶다. 아마... 그렇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거다. 하지만 그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꿈에서나 가능한 일임을,,, 그냥 미지의 아틀란티스임을,,,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임을 잘 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박교수님의 펜션 사업에 대해 믿질 않는다. 그냥 이따금 그 분이 예전 좋았던 일을, 혹은 그럼에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기 위해 사업 구상은 잘 되시냐고 물을 뿐이다.


옛날 사진. 추억 할 만한 것이 있따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여행, 마드리드 공항에서 길을 잃다.  (0) 2015.05.23
스페인 여행의 시작, 카잔차키스  (0) 2015.05.23
영덕대게 만찬  (0) 2015.01.17
포항을 떠나고, 로드킬  (0) 2015.01.15
포항 시내, 우체국5거리  (0) 2015.01.04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