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5. 5. 30. 00:56

 

지도의 큰 길만 보고 대충 한 바퀴 돌아야지 생각했다.
이미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들이 마드리는 별로 볼 게 없다고 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나는 그냥 마냥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금을 즐기러
곳곳에 있는데 왜 볼 게 없다고 했을까? 아마 그들이 말한 것은 랜드마크, 혹은 별점이 매겨진
뷰 리스트 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에 대한 정의와 본인이 선호하는 스탈일이 달라서 그렇겠지.

 

 고흐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풍경

 

술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니, 고흐가 그린 "아를르,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생각났다.
유럽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나와서 밥 먹는구나. 날이 좋으니 그럴만 한데, 겨울에는 어떨까?
이럴려면,,, 우선 인도가 잘 깔려 있어야 하고,,, 차 다니는데서 밥 먹을 수 없으니깐,,,
그리고 가게 주인도 좌판 깔 영역을 행인들에게 피해주지 않을만큼 적당히 깔아야 하며,
앞 집이 더 장사 잘 된다고, 좌판 까는 게 불법이라고 신고하지 않는 상인들간 신뢰 시스템이
형성되야 하며,,, 손님들도 길거리에다 음식물 지저분하게 던지지 않는  매너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저런 '외식' 시스템이 우리나라에서도 잘 작동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당연히 아니다 싶었다.

솔광장을 지나 대성당에 이르렀다. 밤이라 건물만 보고 오려했는데, 불빛이 환하다.
소리도 시끄럽다. 11시를 넘기 이 시간에? 뭔일일까 싶어, 행랑객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성당을 향한다.
굳게 닫혔을 줄 알았던 문은 환히 열려있고 그 안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듣던 찬송가는 아닐지라도,,, 이 지역 느낌나는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장관인가 싶어 넋이 나갔다. 천주교 미사 한 번 드려보지 않은 내가 스페인까지 와서???
그것도 대규모 미사가 눈 앞에서 벌어지다니...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의식이지만
미안하게도 관광객인 나의 눈에는 신기한 체험이요, 세속적인 표현으로는 다신 없을 구경거리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 누군가의 신성한 의식을
개인적 경험을 위해 망치면 쓰겠는가. 오오 순간순간 처음하는 경험이 신비로울지라도,,,
경건한 의식에 자연스레 사제의 권위가 느껴지지만 없던 신앙심까지 생기진 않는다.
언어도 안 통하는 내가 그들의 노래와 설교를 듣는다해서 무슨 깨달음을 얻겠는가.
다만,,, 이 시간까지 이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성당에 나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대지식인 이어령 선생님도 자식이 병을 얻고서야 종교에 귀의했다.
신이 없다고 말한 리처드 도킨스의 가족들일지라도,,, 심지어 도킨스 당사자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리면 그제서야 하느님의 바짓가랭이라도 잡고 싶지 않겠나?
근황이 무탈한 나는 아직 종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필요없다.
그때 가서 내가 할 수 없는 게 없음을 느껴 좌절하고, 지금의 나의 오만방자함을 뉘우칠지라도,,,
나중을 위해 억지로 믿지도 않는 성령을 받아들이고 믿는 그런 위선이 절대자가 보기엔 더 괘씸하지 않을까?

 

가는 길에 가로등 주황색 불빛에 반사된 왕궁을 바라보았다. 왕정제라는 정치적 유산 보다 현재와 오늘을 잇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 잘 보존 돼 있음에 부러움을 느낀다. 가는 길이 복잡해 프라도 미술관 근처까지 갔다가
도보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자존심을 접고 전철을 탔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23. 15:41

 

 

스페인 전철은 출입문에 대한 통제권이 기관사가 아닌 탑승객에 있다.
처음에는 사용 방법을 몰라 당황해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신식과 구식이 있고, 신식은 버튼식이고 구식은 레버를 직접 올려야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자동차 창문을 여는 방식처럼 이해하면 되겠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예전에 전철타고 다닐 때가 생각났다.
한 겨울에 내리는 사람도 없는데 정거장이라 멈추고 문이 열리고 닫히니 매우 추웠다.
그때 생각했던 방안이 스페인 시스템 같은 거였는데, 실제로 보니 좀 신기했다.

만약 출입문에 대한 통제권이 승객에게 있다면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비 감소는 물론이며
불필요한 문이 열리지 않는데에 대한 전기세, 그리고 기관사 수고의 노력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재난과 같은 사고 발생 시, 보다 쉽게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그랬다면 기관사가 문을 닫아 놓고 탈출해 대형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같은
사건은 없었겠지.

물론 이에 따른 단점도 있을 것 같다. 통제권에 대한 권한을 승객에게 이양함으로써,,,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할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은 순전히 승객이지겠지.
이래서 우리나라는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기관사라는 훈련 받은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 같다.

뭐 개인의 책임성 제고 및 효율을 고려한다면 전자가 맞겠지만,,, 안전 측면에서 후자가 맞는 것 같다.
다만 후자의 경우 대구 지하철 사고에서 보듯이 전문가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그 사회 구성원 혹은 문화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사소해 보이는 출입문 개폐형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항역에서 10호선을 타려고 했으나,,, 이놈의 어리버리 때문에 6호선을 탔다.
그래도, 튜리뷰날역에서 원래 타려고했던 6호선을 타고 목적지인 안톤 마르티나에 내렸다.
지도를 꺼내 루카스의 집을 찾으려 했으나 막상 매치가 잘 안 됐다. 도로명 표시 및 번지수가 잘 안 나와 있다.
어찌어찌해 번지수가 문 위에 숫자라는 걸 알고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집이라, 한국인 손님이 많았다. 나의 아래 침대를 쓰는 남자가 혼자 오셨냐며 말을 건다.
그 후 약 10여분간 대화를 지속했는데, 혼자 여행이 목적인 나라,,, 말을 끊고 나갈 채비를 한다.
주인 아주머니께 혹시나 치안에 대한 수준을 묻고, 안전하다는 얘길 들어 맘편히 나간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고 분주하다. 더불어 나도 들뜬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23. 14:12

 

여행 첫날, 마드리드 입성

한국에서 스페인가는 비행기는 대부분 경유다.
국적기 직항도 있는 것 같으나,,, 비싼 거는 자세히 안 봐 모르겠다.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약 15시간 걸려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핀란드 공항 라운지에서. 북쪽이라 그런지 5월임에도 사람들 옷이 두텁다.
아시아인들의 유입이 많은지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표지판이 곳곳에 있다. 새삼스럽게 아시아 경제의 성장을 느낀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국제공항은 '글로벌'해야 한다.  
영어와 해당국 언어를 모를지라도, 출,입국 수속과 환승에 불편이 없어야 한다.
실제 내가 접한 공항수들이 그랬고, 들고 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마드리드에서는 처음으로 길어 서울로 돌아갈 뻔했다.

마드리드 공항은 인천 공항과 달리 출,입국 영역에 명확한 경계가 없다.
그리고 공항 내 표지판에 영어가 적어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은 분명 헷갈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비행기서 내려 출구를 찾아 이동하다,,,
짐이 없는 나는 캐리어를 찾을 필요가 없어서, 그곳을 경유할 필요가 없었고
내 앞에서 가고 있는 짐 없는 몇 무리 일행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사람이 적었다.
약간 불안했지만, 나 말고도 여러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애써 침착하려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여권을 보여주려 출국을 하려하는데, 수속원이 말을 건다.

"where are you going?"
"madrid~!"

"madrid???"
"yes. im going to madrid downtown."

수속원 직원이 약간은 당황한 듯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은 서울행이라고 한다. 엥? 뭔 서울행??? 그제서야 모든 게 좀 이해됐다.
짐 찾는 곳을 경계로 그 곳에서 직진했으면, 바로 출구로 나가는 곳이고
나처럼 어리버리, 우왕좌왕해서 옆으로 튼 사람들은 다시 출국 영역에 이른다.

그는 Salida라는 말이 Exit 임을 알려줬고, 친절히 앉아 있던 자리에서 나와
나에게 가는 길을 알려줬다.

여행 시작과 동시에,,, 하나의 미션을 만났고, 친절한 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클리어했다.            
그래. 여기는 스페인이지. 무엇하나 쉬운 거 없는,,, 밥도 하나 제대로 못 시키는 나는
여기서 유아와 다를 바 없다. 각성 수준을 올리며 전철을 타러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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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5. 23. 12:48

 

스페인 여행의 시작은 카잔차키스다.
13년, 외대 신정환 교수님이 들려준 스페인 여행기 감상문이 인상 깊었다.

스페인은 다양한 문명이 맞닿아있는 교착점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해양과 대륙, 기도교와 이슬람...
다양한 요소들이 만나고 만난 결과가 스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과 이슬람인들에게 스페인인은 익숙하면서 새롭다.

이러한 내용에 이끌려 스페인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궁금함이 생겼다. 그렇게 뒤섞인 스페인 문화는 무엇일지.
10여일 여행을 다녀온 지금, 카잔차키스가 말한 저 의미를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유럽과 아프리카 문명, 해양과 대륙 기질,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숙지한 다음
그것이 어떻게 스페인 문화에 반영되고 발전 됐는지, 스페인 문화와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
비교 분석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화두를 품고 시작한 여행에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단편적일지라도 나만의 스페인을 만났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에 것들에 대해 차차 공부하면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

이아손이 금양모피를 찾기 위해 흑해로 나아갔듯,,,
나도 나만의 금양모피를 얻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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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17. 23:39



방이 따수워 잠을 잘 잤다. 너무 후끈한 나머지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 좀 걸었다. 장사 해수욕장을 비롯 길 건너 정류소 일대를 걸었다.

군대에서 외박이나, 휴가를 나갈 때면 항상 이곳에 왔다. 전날 잘 다려 놓은 전투복과 전투복을 신고 있으면

정신도 각이 잡힌 듯 차분해진다. 나가는 날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원래 6시 기상인데, 그때 일어나면

준비하는데 다소 늦은 감이 있어서 불침번한테 10-20분 정도 먼저 깨워달라고 한 뒤 씻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오기 위해 샤워장 및 화장실이 분비는 시간을 그렇게 피한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당직사령한테 신고하고, 부대 차량을 통해 이곳에 도착하면 7시 전후.

중대내 아는 사람과 같이 나오면 지금은 편의점이 들어선 조그만 가게에서 소세지 및 음료수로 아침 허기를 채운다.

부대 PX에서도 충분히 사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밖에 나오면 민간인 코스프레를 하고 싶음인지

그것도 너무 맛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울진에서 오는 것들도 있었고, 더 위에서 오는 것도 있었는데

암튼 7번 버스를 운행하며 행선지가 포항터미널이다. 아는 사람과 나오면 늘상 가던 설렁탕집이 있다.

나는 일병인가, 이등병 때 바로 윗고참과 함께 여기까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형이 여기서 제일 비싼 꼬리곰탕을 사줬었다.

당시 12,000원인가 13,000원인가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적은 가격이 아니다. 그래도 그게 선후임간의 재미아니겠는가.

그 형은 인천사는 사람으로 군에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아주 살뜰하게 지내는 관계로 자리잡았다.


서울해장국집. 부대 복귀하기 전에 저녁을 먹었던 곳으로. 차량이 항상 많아 나름 맛집이었을텐데도

내가 선지해장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항상 맛이 별로였다. 


그렇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부대를 떠날 때도 항상 여기서 시작했듯이 돌아올 때도

이 곳에 내려 부대를 향할 수 밖에 없다. 늦은 밤 부대를 향해 터벅터벅 들어갈 때면 쓸쓸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든다.

내가 군인인 이상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가야하고, 민간인이었던 나와 이별을 해야하는 아쉬움 있기 마련인데

이 장사정류장이 그 분기점인 것이다. 신데렐레가 12시 종치면 현실로 돌아가야 하듯이

나를 포함한 장새대대인들에게 이 정류소는 군인과 민간인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군인과 민간인의 분기점. 장사정류소


부대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걷자니 뭔가 또 새록새록하니 울컥울컥한다.

꿈에도 그리던 전역을 하고 이 곳을 벗어났는데, 10년만에 이 곳을 다시 오다니...

10년 사이에 나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도 바다는 그때랑 변함이 없는데.

 

처음하는 혹한기 훈련이었을거다. 이 바다를 제대로 본 시기가. 훈련 막바지에 우리 중대의 임무 특성상

레이더 기지 경계 증원에 나선다. 막날 야간행군을 하기 전에 각자 군장을 챙겨 산을 야트막한 산에 오른다.

200m 고지의 125레이더 기지에 오르면, 영덕군 남정면 일대의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야밤에 이 바다를 보며 힘든 훈련과 추위도 잊을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다. 바다 위에 달빛이 추욱 가라 앉아

빛의 끝이 해안선까지 다다르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달빛도 밝아 세상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가로등 때문에 감상 이외에는 달빛의 용도를 몰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니

달빛으로 인해 깜깜한 와중에 보일 것은 다 보였고, 왜 '무월광취약시기'라는 말이 군대에서 통용되는지 몸소 알게됐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그믐 전후를 무월광취약시기라 부르고 적의 침입을 대비해 이 시기에 경계 병력을 더 투입하고 시간을 늘린다.


그렇게 장사해수욕장 정확히는 동해 바다의 위용을 제대로 인지하고 나서, 나는 기회가 되면 이 바다를 바라봤다.

한 없이 뻗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냥 마음이 편안해 지고 시원했다.

답답한 군생활일지라도 그래도 그냥 바다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자연 앞에 사람이란 그렇게 작아지고 겸손해지나 보다. 바다가 검으면 검은대로,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맑개 갠 하늘에 상응하듯 짙푸른 바다면 파란대로 시시각각 그 얼굴을 달리했는데 그때마다 바다가 바다란 사실은 변함 없이

한결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나 상병 때 125R/S에서 찍은 사진. 언제봐도 시원하다. 거친 파도와 끝간데 없는 경계. 나만의 해우소.


박교수님은 나 학생 때 고흥을 내려가면 은퇴하고 나서 이곳에 펜션을 짓고 노후를 맞으리라 하셨다.

은퇴를 하신 지금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요원할 것 같은데

왜 그 당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사 조금 알 것 같다. 나 역시도 은퇴를 하고 나면 동해바다 이곳 어느쪽에 펜션사업을

하며 노후를 맞고 싶다. 아마... 그렇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거다. 하지만 그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꿈에서나 가능한 일임을,,, 그냥 미지의 아틀란티스임을,,,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임을 잘 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박교수님의 펜션 사업에 대해 믿질 않는다. 그냥 이따금 그 분이 예전 좋았던 일을, 혹은 그럼에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기 위해 사업 구상은 잘 되시냐고 물을 뿐이다.


옛날 사진. 추억 할 만한 것이 있따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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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17. 18:49


군 생활하면서도 부대 인근에서 회를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맛집은 모른다.

숙박과 식당을 겸하고, 우리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장사명품회 대게 전문점을 들어왔는데

관광지기 때문에 바가지가 신경 쓰인다. 메뉴판의 대게 가격을 보니, 싯가라고 쓰여있다.

회를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산지 대게를 먹을까 하는 마음에 대게를 고집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일반 대게는 마리당 7만원. 남자 3명이서 괜찮게 먹으려면 2마리.

배부르게 먹으려면 3마리는 먹어야 한단다. 3마리는 다소 오바인 것 같아서 2마리만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게를 고르러 갔는데, 크기와 생김세가 다른 놈들이 다소 있다. 주인장 아저씨가 박달대게라고

가르킨 놈들은 찝게발에 완장을 차고있으며, 크기도 실하고, 생긴 것도 상남자다

가격을 물어보니 마리당 15만원. 영덕대게도 맛있는데, 그 중 끝판왕이 박달대게라고 말한다. 

상술 같은 말투에 경계심이 들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먹어보랴 하는 아쉬움이 기어나온다.

일반 영덕대게와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보니, 확실히 맛이 다르다고 한다. 이거 먹으러 서울서 내려오고,

이거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일반 대게 못 먹는다고 말한다. 혹하는 마음에 작은 것은 없냐고 물어보니

아까 고른 놈들과 비슷한 놈들이 마리당 12만원이다. 7+12만원 짜리를 고를까 고민했지만, 

나의 욕식만 무작정 고집할 수는 없었다. 직장인인 나는 뭐 상관 없지만, 

집은 잘 살아도 당장의의 현금은 별로 없는 이 놈들에게는 그래도 큰 부담일 수 있었다.

아쉬움을 접고, 아까 그놈 2마리 주세요하고 가게로 들어선다.


화장실 다녀온 친구 한 명이 너무 비싼거 아니냐 살짝 타박했지만, 막상 맛을 보니 제일 맛있게 먹는다.

전에도 대게는 먹어 본 적이 있었지만, 그것들의 맛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담백하면서도 달달하고, 향도 오래가고... 우와 이게 대게고. 이래서 사람들이 대게대게 하는구나.

대게의 깊고 깊은 맛에 모두들 정신이 나갔다. 서울에서 먹으러 오는 이유가 있었고, 일반 대게도 이런데

박달대게는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시중의 나온 큰 게들은 다 숫놈이다. 암컷은 수종보호 때문에 어획이 금지 돼 있다.

박달대게는 울릉동 근처 심해에서 잡아오고, 대게의 제철은 겨울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연찮게

제철에 싱싱한 놈들을 먹으러 온 것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석화, 굴전, 오징어 무침 이런 것도 맛있지만,

역시 메뉴는 뭐니뭐니해도 게 기반의 요리다. 매운탕이며, 게 뚜겅을 활용한 볶음밥까지...

정말 맛있다는 말 이외에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추운 곳에서 떨다 들어와서 그런지 

더 맛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동의한 것은 1년에 한 번씩은 부모님 모시고 와야겠다. 이런 느낌!

그런데 막상 현실적으로 말 많으신 부모님들이 여기까지 불평불만 없이 오기란 힘들 것 같다는...ㅎㅎ


그렇게 둘째날도 본의 아니게 안주가 너무 좋아 술을 예상한 것보다 많이 마셨다.

방금 전의 사고도 있고 그래서 분위기가 많이 다운 됐었는데, 다들 사람이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아까 일은 언제 그랬냐는듯 웃고 떠들기 바쁘다.

술을 거나하게 먹고도 모잘라 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더 사왔다.

잘 먹고 잘 쉬고 있구나. 문득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왠지모를 웃음을 날린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15. 22:08


사람이 없어 횡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으니 흥도 가라 앉았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명승원 만두 집을 들어갔다.

예전에도 몇 번 왔었던 곳이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딱히 갈 만할 곳도 없었다.

뭔가 그저그런 술집들만 있어서 만두 전문점을 가는 게 덜 리스크하다 판단했다.

전문점이라 그런지 메뉴도 단촐하다. 만두국, 군만두, 왕만두, 물만두, 쫄면 대략 5-6가지 메뉴였다.

친구들은 추운지 만두국을 나는 쫄면을 그리고 양이 좀 모자랄 것 같아 군만두를 시켰다.

결과적으로 맛은 훌륭했다. 직접 피를 갈고, 만두소를 준비하던데 확실히 인스턴트에서 느낄 수 없던

군내, 고기의 그득함, 뭔가 말 할 수 없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다만, 쫄면만 빼고는.

쫄면의 고향. 인천에서 와서 그런지,,, 이 맛은 확실히 별로였다.


배를 채우고 그래도 못내 나는 아쉬워 포항역까지 거리를 좀 돌아갔다.

골목 구석구석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 무엇이 아련하고, 씁쓸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시간이란 놈은 미련보다 빠르다.

차를 사들고, 차를 세워둔 포항역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시장이 참석한 KTX 개통 기념 행사를 했지만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없다.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만이 빈 거리를 가른다. 


포항과 바다에 미련이 있었지만, 실망 한 점도 있고 내일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다음 일정은 최대한 많이 올라가야했다. 그게 맘 편할 것 같다. 마음은 아니 나만 생각한다면 월포, 화진, 장사나 강구

이쪽 중 한 곳에 묶고 싶었지만 한참 더 위인 울진을 행선지로 정했다. 오후 5시쯤 되니깐, 어둡다. 시골은 밤이 빠르다.

포항 시내를 벗어나자 급격히 빛이 없다. 그럼에도 이 곳 지리는 눈에 익다. 외박이나 휴가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 쯤 항상 이 길을 지나갔으니. 이등병 때 처음 전입하던 날이 기억난다.

대구 50사단에서 5주 간 훈련을 받고, 영천 122연대 본부에서 한 3일 대기하다가,,,

당시는 타중대 소대장이었지만, 내가 짬 먹었을 때는 나의 처부장, 인사장교였던 김성규 중위(당시는 소위였나?)가

이등병 찌끄래기 몇몇을 데리고 장사로 왔다. 겨울이었고, 밤이었고, 추웠다. 밖은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바다라는데, 소리만 얼핏 들릴 뿐 어둠과 분간할 수 없었다. 1과 1/4 트럭(군대에서 쓰는 소형 트럭인데, 5/4 트럭

이라고 쓰면 될 것을 왜 저렇게 표기하는지 모르겠고, 현역들 사이에는 다찌-왠지 dodge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론-

라고들 부르는데, 진짜 다찌 트럭과 비교해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어 좀 안 쓰러운 이름이다. ㅋㅋ)에 짐짝처럼 실려

정말 막연함만 있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전입하는 이등병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그 첫발을 내 딛는 시작에... 어떤 긍정적인,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랴,,, 자유가 속박된 것이 아직 뭔지도

모르는 그 얼떨떨함, 그야말로 체념에 의한 무념무상이 당시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시길래... 살짝 졸았다. 운전으로 고생하는 친구를 위해

예의상 그러면 안 된다고 잠을 깨려 노력했지만, 한 번 무거워진 눈꺼풀은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된다.

속수무책으로 고개는 떨어졌다, 올랐다를 반복하면서도 내심 기분은 아늑하고 좋은,,, 그렇지만 미안한

그런 감정이 지속되는 와중에 갑자기 옆에서 '아! 씨팔'하면서 쿵하는 소리가 나며 차가 흔들렸다.

조는 와중이었지만, 뭔가 심상찮음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바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순간 '아 친구도 졸았구나. 좆됐네. 무슨 차하고 부딪혔나보다. 꽉 잡아야지. 충격을 최소화해야지, 몸을 틀어야지'

1초 사이에 이런 생각들이 파바박 지나가고 바로 행동으로 나왔다. 그리고 2차 충동을 예상하고,

몸을 움츠렸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차는 아까와 같이 100km 속도 내외에서 운행중이다.

뭔가 싶었다?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말을 한다. '아 시팔 로드킬이였어. 새끼 고라니...'

아. 다행이구나. 새끼 고라니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안전하니... 안도의 한숨이나왔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아마 그 새끼 고라니는 바로 죽었을 것이다. 숨이 붙어 있었어도, 이 추운 날에

쉽게 그의 체온은 식어갔으리라. 그리고 집을 나간 새끼를 기다리는 어미 고라니는 밤을 세웠겠지.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는게... 정말 못 할 짓이다. 내가 벌레, 곤충은 많이

없애 봤지만 막상 고라니의 생명을 뺏는데 일조했다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입이 가슴이 무겁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문제가 생긴 좌측 하단 라이트를 점검했다. 핸드폰 불빛을 비춰 보니, 작살이 났다.

차도 이런데, 새끼 고라니는 어쨌을까 더 미안했다. 그리고 더는 지켜보지 못 했다. 그 어딘가에 피라도 있으면

어찌할까,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치사했다. 나는. 그렇게라도, 죄책감을 덜 가지려고 애썼으니.

일단 친구가 응급조치를 간단히 했다. 너덜너덜한 범퍼를 떼어내고, 푹 들어간 바퀴 위를 발로 차 다시

복원 시켰다. 육안으로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래도 뭐가 왠지 차가 기운다, 소리가 난다. 이런 말을 꺼낸다.

아마 단거리 운행이었으면 그냥 갔겠지만 남은 거리도 많고, 내일 일정도 고려하면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보험을 부르는 게 맘편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상담사와 통화해 보니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인근에 영업하는

카센터가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거기까지 고장난지, 멀쩡한지 모르는 차를 끌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우리를 끌고 올 차도 없다. 젠장. 주말에 지방에서 차 사고 난 사람들은 어찌하란 말인지...

보험이... 참... 불안한 마음에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차를 끌고갈 수는 없다고 판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렉카차 직원이 오면 상태를 점검해 달라고 하기로 했다. 

그들의 오랜 경력을 믿는 수 밖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포항시내에서 차가 오는데, 장사 해수욕장까지는

못해도 30분은 걸린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걸었다. 후후. 이렇게라도 여기를 보게되는구나.

얄궂은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제서야 친구들도 긴장이 풀린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고라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순간에 고라니 살리자고 핸들을 팍 꺽었다면 더 큰 사고가 났을거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들이받으라고 얘기한다더라. 말을 꺼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살생의

방조자인 나보다 당사자인 그가 더 큰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으리라. 그런 그에게 뭐라고 말도 못하고,

그냥 잘했다. 그래. 잘했어.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로드킬 상황 발생 시, 지역번호+120 을 통해 신고를

해야 2차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찬바람을 쐬며, 노가리를 까고 있는 사이 차는 왔다.


그리고 시범 운전을 이리저리, 요렇게 저렇게 해보더니 이상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타라고 한다.

이미 뭔가 어떤 흐름이 끊긴 시점이라, 나는 그냥 이렇게 된 마당에 여기서 저녁 먹고 자자고 했다.

사실 '이렇게 된 마당이'란 문맥에는 여행 일정을 변경해야 할 그 어떤 논리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쉽게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모르긴 몰라도 방금 사고로 인해 밤길 운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무의식중에 자리잡아 술이나 먹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는 길에 있었던, 숙박과 식사를 겸할 수 있는 식당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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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5. 1. 4. 23:11


포항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가봤다. 혼자서 하는 첫 장거리 여행이었다.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찜질방에서 자고,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차가 포항역을 들어선다. 이 곳도 변했다. 쇠락한 듯한 인상이다.

당연히 10년이란 시간차가 있으니, 무엇이든 더 낡고, 색이 바래지길 마련인데.

그 속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것 같다. 설레임이 긴장감으로, 긴장감은 아쉬움으로 변한다.



사람이 없다. 한적한 거리. 왜 이렇게 됐을까? 궁금하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정지용 <고향>


아마 시인이 말한 것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기억 속의 고향과 사실인 고향간의 불일치. 그로인한 낯섬

그런데 이것은 욕심이다. 무엇이든 시간의 흐름에 변하는데, 고향만 그대로이길 바란다는 것이.

그럼에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다 왜 아쉬움을 느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 그 아쉬움의 기저에는 상실감이 있는 것 같다. 내 기억 속 아름다운 추억이 사라지는 듯한, 

더 이상은 회상하지 못할, 그런 기회가 사라질 것 같은...


번화가로 들어서니, 사람이 없다. 겨울 탓이기도 하지만, 몇몇 문 닫은 가게가 있는 걸로 보니

유동 인구자체가 줄은 듯 싶다. 예전에 주말에는 이 거리가 빽빽했는데, 왤케 사람이 없지?

인구 변동이 있나 싶어 포항시 인구 통계를 찾아 봤는데, 오히려 10년 전 대비 소폭 증가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3개. 새로운 번화가가 생겼거나, 젊은이들이 주말에는 대구로 간다거나

아니면 중장년층 인구는 늘었는데, 젊은 층 인구는 감소했을 경우. 

좀 더 찾아보기는 귀찮아...  다음에 이 지역 사람이 있으면 답을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패스


거리를 들어설수록, 특정 가게 앞을 지날 수록 추억들이 하.나.하.나. 재생된다.

영화관, 그때 봤던 영화, 그때 했던 얘기, 그때 먹었던 음식, 네가 짓던 표정,

네가 불러줬던 노래, 보내주었던 편지, 문자, 함께 했던 시간, 장소, 그 무엇이 됐든 떠오른다.

시네마 천국의 러브테마가 흘렀다면, 눈물이 났을거다. 



늘상 여기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4시 약속이라면, 3시 반부터 설레기 시작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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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2. 21. 00:19



전날 과음으로 11시쯤 일어났다. 

셋다 수영을 좋아하는 터라, 비싼 돈 주고 수영을 하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면 '수영'이라는 운동 보담 '호텔 수영장' 체험에 관심이 많았다.

이용료 각 2만원과 J와 D의 수영물품 대여료 각 8천원씩 도합 76,000원의 지출이 있었다.

12시에 들어가 충분히 수영하고, 좀 쉬고 3시에 나왔으니 본전은 뽑은 셈.


사우나는 수영을 하면 이용할 수 있게끔 붙어 있는데, 금호강변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수영장에는 총 4개 레인이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 계셨다. 조용하니, 우리끼리 놀기 좋았다.

그러던 중 나의 제안으로 각자 수영하는 폼을 영상으로 찍었다. 모든 운동이 자세도 무시할 수 없는데, 

물 속에서 하는 수영은 타 운동에 비해 내 폼을 보기가 힘들다.  

찍은 걸 보니 자유영은 그런대로, 접영에서 팔이 좀 이상한데, 셀프 진단과 교정이 가능해 좋은 것 같다.


시간이 애매해 따로국밥집은 패스하고, 바로 포항으로 넘어 갔다. 

대구에서 포항은 차로 1시간 거리. 이젠 새로 생겼다고 말하기도 뭐한 대구-포항 도로를 타면 금방이다.

군에 있을 때 나도 이 거리를 몇 번 곧잘 왔다갔다 했다. 그때는 진짜 생긴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운전병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당시 나는 짬 먹은 병사의 권리를 활용키 위해 코골이 수술을 받았다. 굳이 안 받아도 생활에 불편은 없었는데, 

이때 아니면 언제 무료로 하나 싶기도 하고 나름 뺑기질 부려도 뭐라할 선임이 없기에 기꺼이 수술을 받았다.

대구, 경북권 몸에 문제 있는 병사들이 모이는 곳이 대구통합병원인데, 수술 전 진료 및 검사 같은 것들을 받기 위해

군대용 앰뷸런스를 타고 여기를 왔다갔다 했다. 


출처 : 뉴데일리 12.01.18

윗 사진이 그 앰뷸런스인데 저기에 사람이 꽉 차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창도 없어 밖도 못 본다.

그럼에도, 기어코 나가려고 애썼다. 아련하고, 애틋하고, 안쓰러운 20대 내 젊은 날...


군인들에게는 사소한 행복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어디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 좋다라는 것이다. 

비록 그 시간이 짧고, 돌아갈 것이 명확함에도 잠깐이나마 일탈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느끼기 위해 감수해야 할 것이 좀 있는데, 그 중 첫번째는 불편이다. 

군대 차가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10년전만해도 구식이었다. 나 말고도 아픈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항상 차는 만원이라 

비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좁히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왔다갔다 2시간이면 삭신이 쑤신다. 병 떼러 갔다가 병 얻고 온 셈이다. 

그리고 외진에는 왔다갔다, 거기서 또 뭐 접수하고 기다리고 하루가 다 소요되는데 일반 전투중대원들은 눈치가 보이겠지만

나 같은 행정병들은 일이 쌓인다. 다녀와서 야근을 필히 한다. 그러고 보면 멘탈적으로도 이로울 게 없는 것인데도... 

그 잠깐의 일탈이 주는 행복감을 보고자,,, 참 건수만 있으면 나가려고 했던 모습이 안쓰럽고, 우끼기도 하고... 

이따금 선탑자 재량으로 중간 휴게소에서 한 번씩 쉬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로 1시간 거리인데 쉬는 게 좀 우끼기도 하다. 

선탑자도 군인이였고, 그도 일탈을 즐겼으리라. 그러면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사먹었는데, 막상 PX보다도 초코바며, 

음료수며 더 비쌌는데 무슨 허세로 그걸 사 먹었는지??? ㅋㅋㅋ 


창밖으로 청통휴게소가 보이니, 아련하게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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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
여행2014. 12. 20. 21:40

 

출발은 분당이다. 4시에 퇴근해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인천서 온 친구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차에서 먹을 간식을 샀다.
최근에 문제가 된 마카다미아 땅콩도 구매했다. 먹어보니 왜 1등석 간식인지 알겠다.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혔다. 차가 없더라도 눈길은 그 자체가 부담이다.
출발 전 예상 시각은 7시 반이였으나, 도착하니 9시 반이다.

금호강을 끼고, 죽 늘어선 인터불고호텔 야경이 멋있다.
도시 촌놈들이라 5성급 호텔이란 이름만 듣고도 긴장했다.
하루에 35만원 짜리 방인데 돈 많은 사람들만 오겠지? 외제차만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훌륭한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했던가? 별5개는 거품이다.
수영장 2만원, 사우나 1만원으로 비용이 따로 들뿐더러,
객실 내 칫솔도 사야하고, 심지어 와이파이도 유료다.(시간 당 8천원인가?)
회사 혜택으로 3만 5천원에 묶어 큰 돈은 아니였지만, 그 돈 마저 아까웠다.
그 이외에 시설은 다 깨끗하고 좋았더라도 한 번 상한 빈정은 갈 때 까지 그대로였다.
 
짐을 대충 풀고, 동성로로 향했다. 가는 도중 기사님에게 현지 사정에 대해 물었다.
대구 경제는 어떤지, 가 볼만한 곳과 특징은 어떤지,
막창 집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음 날 해장은 해야하는지.

기사님은 전 시장이 너무 개인 택시 면허를 많이 풀어줘 먹고 살기 힘들다,
전 시장 한 게 나무 심은 것 빼고 하나도 없다, 새누리당 보고 뽑았는데 이거 안 된다.
이제 인물보고 해야지, 맨날 이러니 발전이 없다 했다.

잠은 모텔에서 자도 되는데,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다. 어느 곳은 뚜껑이 열려 별도 보인다.
(J와 D는 이 대목에서 대구 인터불고 '창렬'호텔이라 평했다.)
막창은 경산에서 먹으면 되고, 해장은 '교동따로'나 '대구따로'에서 하면 되는데,
둘다 동성로에 있으니 술 먹고 막차로 들리면 된다고 했다. 나름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
 
동성로는 군대 있을 때 선,후임들이 점프 뛰던 곳이다. 나에게도 몇 번 가자고 하였으나, 거절했다.
귀찮았다. 내 보직이 인사과 행정병이다 보니 위수지역을 벗어난다는 부담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휴가증 한 장 써서 소지하면 헌병들의 검문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한테는 임의로 끊어줬다.
나는 외박도 잘 안 나갔다. 여자 못 꼬셔서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걍 나갔어도 술 한잔 하는 게 전부였다.

그때 동성로에 대해 들었던 얘기가 대구의 명동이라는 것이다. 근데 가보니 명동보다는 넓다.
커서 그런지 사람이 듬성듬성 했지만, 여자들은 이뻤다.
나중에 대구 '현지' 출신 친구도 하는 말이, 본판은 대구 여자가 서울 여자보다 낫다 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둘러보고 다시 택시를 탔다. 기사님에게 막창골목 가주세요라고 했더니. 어데요?라고 되묻는다.
잘 못 들으셨나 싶어 막창골목이요라고 말하니 다시 되묻는다. 그러니깐, 어느 막창골목이요?
이쯤에서 살짝 당황했다. 엥? 막창골목이면 막창골목이지, 어디긴??? 유명한데 있잖아요.라고 말해도
유명한게 한 두개가 아니라하면서 어디로 갈지 묻는다.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내가 언제 와봤나? 대구를 ㅎㅎ
차는 출발했고 검색하기에도 늦은 상황이라 기사님과 대화를 시도했다. 괜찮은 막창집(가격, 여기서 거리, 맛)에
대해 물었더니 경북대 앞 괜찮다며 안내를 해주신다. 그래. 이런게 임기응변이지 이러며 예정에 없던 경북대로 향했다.

가는 도중 경북대에 대해 물었다. 경북대의 학업 수준은 어떤지, 경내는 얼마나 큰지, 막창집은 어떤지.
경북대는 반에서 1,2등 하는 친구들이 가는 학교라 했다. 특히 의대는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싹 다 가는 곳이다.
그 다음에 영남대, 계명대 수준이라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소 놀랐다. 내 군대 바로 밑 후임이 경북대 법대 출신인데
고문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경북대는 그 '싼도'라는 녀석 때문에 약간 허명있는 학교라 여겼는데,
기사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구, 경북 제일 명문대다. 실제로 다음 날 호텔에서 지역신문(매일신문, 영남일보)을 봤는데, 
경북대 예상 수능 배치표가 있었다.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가 대구교대 보다 10점 정도 높았으니 정말 높은 학교긴 하다.

막창 골목에서 내려 제일 사람 많고, 깔끔한 곳으로 갔다. 기본이 3인분이라 일반 2, 매운거 1인분을 시켰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막창은 그닥이다. 잘 안 익고, 표식도 안 나기 때문이다. 식탐에 조급했지만, 별 수 없다.
1차를 끝내니 대략 술이 올랐다. 걷자 해 경북개 교대로 들어갔다. 아까 그 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학교를 도는데
1시간 반 걸린다하여 캠퍼스 투어는 못 하고 걍 자판기 커피나 한 잔 하자했다. 아직 시험기란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경북대가 공부를 잘 하는 학교라 그런지, 확실히 동성로 여자들이 이뻤다.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