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1. 2. 14. 14:37

길상사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소유주는 김영한이라고 하는 기생이었는데,

97년에 법정스님께 기증했다.

(백석은 96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99년 길상사에서 눈을 감았다.)

 

당시 1,000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라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고,

몇 년전에 그 사연을 접한 나도 놀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 분에게 백석의 시 한 줄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생이란 직업과 일제 말엽, 청춘이란 배경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멸시와 차디찬 눈총 속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진 세월을 견디게 해준

힘이 아니였을까? 

 

그 후로도 그 분의 삶은 고난하고 외로웠을거다.

6.25, 군사 독재 정권 등을 거치며

여자 혼자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숱한 남자들을 만났겠는가?

 

그도 시장거리에서 배추를 파는 일반 아낙들처럼

먹을 것 없고, 가난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만나

자식색끼들 낳아 기르는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부러워 했을 수 있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럴 때 마다 백석의 시 한 구절을 읊조리며,

아름다웠던 그 때, 행복했던 그 날밤을 떠올렸을거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

 

'그렇게 속절 없이 떠날거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왜 했어요...

 

 그래도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당신 때문에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그렇게 둘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못 했을지라도

문학이 돼 영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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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