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소유주는 김영한이라고 하는 기생이었는데,
97년에 법정스님께 기증했다.
(백석은 96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99년 길상사에서 눈을 감았다.)
당시 1,000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라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고,
몇 년전에 그 사연을 접한 나도 놀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 분에게 백석의 시 한 줄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생이란 직업과 일제 말엽, 청춘이란 배경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멸시와 차디찬 눈총 속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진 세월을 견디게 해준
힘이 아니였을까?
그 후로도 그 분의 삶은 고난하고 외로웠을거다.
6.25, 군사 독재 정권 등을 거치며
여자 혼자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숱한 남자들을 만났겠는가?
그도 시장거리에서 배추를 파는 일반 아낙들처럼
먹을 것 없고, 가난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만나
자식색끼들 낳아 기르는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부러워 했을 수 있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럴 때 마다 백석의 시 한 구절을 읊조리며,
아름다웠던 그 때, 행복했던 그 날밤을 떠올렸을거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
'그렇게 속절 없이 떠날거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왜 했어요...
그래도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당신 때문에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그렇게 둘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못 했을지라도
문학이 돼 영원으로 남았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즉시공, 공즉시색 (0) | 2022.05.03 |
---|---|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0) | 2022.04.29 |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0) | 2021.01.10 |
돌 잔치, 감사인사 (1) | 2018.05.10 |
부모됨의 깨달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0) | 2017.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