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6. 5. 1. 12:40

내가 취업준비를 하던 2010년만 하더라도,

조선사는 대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곳 중 하나였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다.

최고 연봉은 물론이며 신규 고용 창출 및 수출 주도를 통한 내수 경기 활성화, 경상 수지 개선 등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보면, 조선사 구조조정 이슈가 화두다.

세계금융위기가 진화된 2010년 부터 경제가 침체기에 이르러 선박 주문 건수가 줄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원 개발 산업 등을 시도했는데 이마저도 부실했고,

최근에는 원유 하락으로 수주 건수가 0건이라 누적 적자가 수 조원이라는 것이다.


취업 낙방을 경험하던 2010년에는 위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이 부러웠다.

짱짱한 스펙은 물론이며, 앞으로 떵떵거리며 살 모습까지.

무엇하나 확실한 게 없었던 나와 비교해, 그들은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회사가 부정회계로 망하고, 몇 천명씩 잘라낼 줄 누가 알았겠나?

브릭스니, 친디아니, 뭐 제2의 브릭스니 등등 낙관적인 경제 전망론만 판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L의 실직 얘기가 들려오고, 그 이후 소식은 전해지질 않는다. 

K는 은행과 D회사를 두고 고민했는데, 은행 가길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나중에 어떻게 아랴.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K도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의 평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어렵다.

꿈이니, 자아실현이니 다 좋은 말이지만 의,식,주 해결이 안 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또한 자존감을 지키는 방식에 있어 예전보다 부쩍 외부 변수의 영향이 커진 것 같다.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계 경제의 흐름, CEO의 경영 전략, 정부의 경제 정책 등에서

더 큰 영향을 받고 내 근속년수가 결정되는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업무 전문성을 통해 인정 받으려고 하기보다 30대 초반부터 퇴직 후 인생설계를 한다.

내 주위만 봐도 그렇다. 공사 다니는 친구가 40대에 식당 차릴려고, 주말에 부지런히 한식 자격증을 공부하며

같은 회사에 있는 공채 출신 사람들도 퇴사 후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전문직을 준비중이다.

하나만 파도 전문가로 인정 받기 어려운 직무가 많은데, 이들이 딴 생각을 갖고 있으면 제대로 퍼포몬스가 나올까? 

몇백대 1의 경쟁율 뚫고 들어온, 유능한 사람들도 고용에 불안을 느끼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결정되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일수록

허무주의가 판칠것이며 이는 조직 및 사회 전체의 무기력함으로 확대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비록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세상은 끊임 없이 변한다.

그리고 그 세상은 나에게 유지 됐으면 하는 세상이지만,

내 친구, 지인들이 살아가기에는 벅차고 힘든 곳이며,

내 조카와 자식들이 살아 내기 힘든 곳 일 수 있다.  

이런 세상에 순응해 살 기도 싫고, 개혁하기 위해 뛰쳐나올 용기와 능력도 없다.


나는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한 평생 살 수 있을 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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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