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얘기2013. 12. 19. 09:58

고등학교 때 배웠던 지리에 관한 기억은
특정 국가가 어디에 있고, 지형과 기후는 어떠하며,
특산품으로 무엇이 유명하다는 것 쯤이다.

그런 추억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요즘 논란인 세계지리 8번 문제를 봤을 때 당혹스러웠다.
대학교 전공시간에 배운 세계경제의 블록화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지리가, 지형적 특성에 국한된 점에 비추어 볼 때
대학교 수준의 지식을 접하는 고3 수준은 매우 놀랍다.

근데 이 8번 문제가 수능 후 지속적으로 뉴스에 오른다.
보기에 답이 없단다. 뭔 개소리야? 하겠지만, 현재 기준으로 보면 답이 없다.

 

논란이 된 지문은 ㄷ- A의 총생샌액은 B의 총생산액보다 크다. 이다.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이들은
해당 지문 우측 하단에 2012라고 명기 돼 있고,
실제로 2010년 부터 NAFTA의 총생산액이 EU의 생산액을 넘어섰기에
해당 지문을 틀렸다 이의를 제기했고,

반대인 평가원 측은 '실재로' 그렇긴 하나,
수능 문제를 학생들이 공부하는 EBS 교재와 교과서에서 출제하고
해당 교재에서 사용된 2009년 통계 기준으로는 ㄷ 보기가 맞기에
3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교과서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라면 풀 수 있다 하여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에 반발한 학생 측은 법원의 판결을 요청했으나,
법원 역시 평가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논리는 소거법(틀린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형태)에 의해
ㄴ,ㄹ은 확실히 아니기 때문에 ㄱ,ㄷ이 답이 될 수 밖에 없으며

교과서 밖 최신 통계를 일일리 확인하려면
수험생에게 부담을 줘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이게 정말 무슨 개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 안 된다.

최신 통계 확인 안 하고 문제 낸 게으름에 대해서는 사과 한 마디 없다.

소거법 논리로 쳤을 때, 왜 처음부터 정답인'ㄷ'를 제거할 가능성은 열어두지 않았으며
고등학생이 공부하기 버겁다는 효율의 문제로, 틀린 것을 맞다고 배우는 교육의 방향성이
정말 우리 학생들에게 옳은 것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다.
한 번 잘못된 지식을 훗날 다시 배우게 될 때 느끼는 혼란과 재학습으로 인한 비효율성은 어찌하고,
그런식으로 우리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은 동시대와는 다른, 틀린 것을 배운다는 공교육 신뢰의 실추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내가 봤을 때, 평가원에서는 자기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옹색한 변명대기에 바쁘다.
우리나라에서 갖는 수능의 권위와 상징성을 잘 알기에,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심정은 공감한다.

그러나, 학생들 입장에서, 그리고 교육자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 사태의 본질을 바라보자.
자신의 위치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
그로 인해 불편함을 겪을 지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책임감!
이런 게 지리문제 한 문제보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와 인성이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