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3. 8. 20. 00:28

 

지난 겨울 가족들과 찾은 제주도.
우도를 갔는데, 산호 해수욕장이 너무 아름다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곳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한 내 바람을 이루고자 올 여름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정은 8,14 저녁 ~ 8 18 저녁까지. 나름 4박 5일이다.
14일 회사에서 3시 반에 나와. 일 하느라 거른 점심을 때우고 김포공항을 갔다.
Priority pass 카드로 아시아나 라운지에서 약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홍성태 교수님의 신작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를 봤다.
어려운 말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는 훌륭한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약 9시 정도에 공항에 도착해 10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예하게스트하우스로 갔다.
하루에 2만원. 조식으로 토스트가 나오고, 빨래도 가능,
여행에 관한 정보를 스텝에게 물어볼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

여행지에 왔지만 별다른 설렘은 없었다.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제주도 풍경으로 어색함이 없다.
내 미천한 경험으로, 여행지의 설렘은 ‘낯섦’으로부터 생긴다.

내일 아침 한라산 등반 일정으로 딴짓 할 여유가 없다.
짐을 풀고, 주변 편의점에서 도시락, 마테차 2개, 복숭아 2개, 맥스봉 3개를 샀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무료 제공인 스타우트 흑맥주를 마시고 잤다.

6시 반에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겼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먹고, 스텝이 불러준 콜택시를 탔다.
관음사 코스 입구까지 미터기로 약 1만원이 나왔는데, 5천원만 냈다.
아마 게스트하우스와 콜업체 무슨 협약 같은 게 맺어졌나보다.

7시 20분부터 본격적인 산행. 카메라와 음식만 있어 몸은 가볍다.
더더군다나 개시하는 스틱이 있어 기대가 크다.
작년에 지리산 가려고 했을 때 12만원 주고 블랙다이아몬드 제품을 샀는데,
일정이 펑크나 이제서야 사용한다.
조정 미숙으로 공중에 헛질을 여럿 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제대로 활용하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체중의 30%까지 팔 쪽으로
분산시켜준다고 하는데, 고질적인 무릎 고통을 줄여 줄 것 같다.

장비의 도움을 얻어도, 더운 건 피할 수 없다.
숲이 우거져 햇빛은 차단 되지만, 워낙 후덥지근해 숨만 셔도 답답하다.
우거진 숲이 직사광선은 가려주지만, 시야 역시 막혀 땅만 보고 간다.
더위를 온 몸으로 받으며, 2-3시간 땅만 보고 간다는 것은
어지간한 멘탈과 체력으로는 확실히 버겁다.

속으로 욕하며 걷고 있는데,
내 앞에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자가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이 많아 얼마나 가나 보자 궁금했는데. 속도가 줄지 않는다.
뭐지? 어떻게 스틱을 든 건장한 남자의 걸음보다 빠르지???
나름 20-30분여 추격전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여자가 중간에 쉬자 간격이 제로가 됐다.

여자 꽁무니를 좇으며, 계속 궁금했던 것 하나.
남자와 대등한 그녀만의 체력 관리 방법이 아닌, 여자의 면상!

드디어 확인의 순간. 나는 그녀를 산 아래 둔 채 열심히 올랐다.

내 옆으로 20대 초반의 남자 3명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운동화, 워커에 청바지 면티 등 젊은 티가 난다.
그 중 한 명이 해병대인지 얼굴이 검고 머리가 짧다.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등산화, 등산복, 스틱을 챙겨도(돈)
20대의 체력(젊음)을 이길 수는 없구나 씁쓸했다.
아무리 김태희가 이뻐도, 수지와 설리, 윤아의 젊음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 연예인들이 젊음을 유지하려 돈을 아끼지 않아도,,,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삼각봉대피소에 오르니 시야가 트인다.
제주시내 전경이 다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으니
50대 초반의 어떤 아저씨가
“혼자 왔나 본데, 이렇게 경치 좋은 데서 사진 한 방 찍어줄게” 호의를 베푼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그 어느 때부터 사진 찍힘을 기피하던 나여서
2-3차례 거부했지만 계속된 호의를 거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예 그럼 멋있게 한 방 부탁 드립니다. 웃으며 카메라를 건넸다.

DSLR 사용이 서툰 아저씨를 지켜보던 친구 분이
“카메라가 좋으니 대충 찍어도 잘 나올 거야” 옆에서 참견하신다.
감사합니다. 말을 건네고 사진을 확인했는데 역광임에도 그럭저럭 괜찮다.

용진각 구름다리 약수터에서 물을 마셨다.
아침 한라산 오는 길, 택시기사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제주가 한 달 째 지독한 가뭄이란 것을 알았는데, 이 약수는 어디서 온 건지 신기했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백록담 전 마지막 쉼터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분명 시야가 말끔 했는데, 금새 구름이 올라와 사방을 가렸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더위를 앗아갔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시원했다. 가을만 되도 추울 것 같다.

밥 먹고 있으니, 아까 나 사진을 찍어준 아저씨와
조금 더 연배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신다.
귀를 기울이니 할아버지 올해 나이가 70이라는 것이다.
매년 1-2회 백록담에 오르고, 윗새오룸(한라산 영실코스)은 한 달에 2-3번 오른다 했다.
노익장이란 이런 것일까? 해맑게 웃고 계신 모습을 보며,
밥 먹다 말고 ‘부끄럽습니다.’ 한 마디 거들었다.

백록담에 오르니,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어느 단체에서 온 것 같기도 하고, 가족 단위의 무리도 많이 보였고.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백록담이 말라 아쉽네.”, “구름이 많아 앞이 보이질 않아 아쉽네”
나는 말라서, 가뭄의 폐해를 느끼게 해주는 백록담도,
구름이 끼여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백록담도 진심으로 멋있다 생각했다.

12시부터 성판악쪽으로 하산했다.
이쪽 역시 시계가 숲으로 꽉 막혔다. 제주도 동쪽 전경은 볼 수 없다.
오는 중 2무리의 외국인을 만났다. 모두 산이 아닌, 관광지에 온 듯한 차림이다.
남자는 로페, 여자는 플랫슈즈 흰바지에 흰티 심지어 어떤 양키는 맨발에 슬리퍼다.
동네 뒷산 오듯 한라산을 찾은 그들 눈에 아이, 어른 가릴 거 없이 아웃도어로 치장한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 아웃도어 열풍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복장은 왜 그런지 최근에 봤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골프를 치고 즐기는 것이 문제이지 그 용구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일은 없다.
 오히려 특별히 골프 세트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 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내 무릎 상태를 체크했다.
과한 운동을 한 듯, 무거움 느낌은 있지만 시큰함은 없었다.
뿌듯했다. 나는 그 이유를 크게 하중 감소와 내구성 증대 2가지로 보았다.

1) 무릎에 전달 될 하중 감소
  - 식단조절을 통한 체중감량,
  - 스틱을 통한 하중 분산
2) 다리 근육 강화
  - 2-3개월여 수영과 걷기를 통한 다리 근력 강화

그리고, 보다 깊게 3가지 세부 요인이 미친 비중을 한 번 생각해봤다.
스틱을 제대로 활용시 평균 25%의 체중 분산이 된다고 가정 했을 때,
약 20kg의 덕을 본 거고, 체중은 5KG 감량, 내구성 증대는 구체적인 기여치 확인 불가로…
약 스틱이 6, 체중감량이 2, 근육량 증가가 2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디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다음 산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3시쯤 성판악 초입에 도착했다. 하산 완료.
여기서부터는 5.16버스가 다녀 제주시내로 쉽게 갈 수 있다.
그리고 빨래를 대충하고, 저녁에 올 친구를 기다렸다.

비행기를 처음 타 본다는 고등학교 동창 J
비록 자주 만나지만, 여행은 이 번이 처음이다.
어렵사리 휴일을 얻은 그에게는 보다 설레리라.

J 마중 나가려,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올 때는 100번 버스를 타
반대편에서도 그 버스를 타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70, 95만 공항에 간다고 했다.
그마저도 학생들 방학 시즌이라 평소보다 2-3배 느려, 전광판에 언제 올지 ‘미정’으로 표시됐다.
인구는 적은데, 땅은 커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보다 자차 & 렌트 문화가 발달한 듯싶다.

제주도에 오기 전, 제주 출신인 매형에게 음식 추천을 받았다. 음식점 말고 시장에서
자리돔으로 만든 물회를 꼭 먹으라 했다.
J와 자리물회를 먹으려 공항에서 가까운, 자리물회를 파는 식당을 알아봤다.

그 때 시각이, 약 8시 30분.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찾은 2개의 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
불금인데 벌써? 의아했지만. 10시면 모든 상각가 문을 닫는 일본을 떠올리며 위안했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한국이다.
맛 집은 아닐지라도, 길 건너 관광객을 상대하는 횟집들이 환하다.
해안가를 따라, 조명이 즐비하다. 불나방이 불을 향해 돌진하듯, 우리의 걸음도 빨랐다.

자리 물회는 없어, 한치물회를 시켰다.
시원한 국물에 부드러운 한치. 그리고 한라산 순한맛(19℃)
내 한라산 등정의 여독과, J이의 첫 비행기 여행의 설렘을 어루만지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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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