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3. 2. 9. 17:25

잠을 못 잤다. 불안했던지, 지속적으로 깼다. 5시 좀 못되서 공항 내 안내방송을 듣고 일어났다. 고장난 플레이어에서 일정구간

반복되는 것처럼, 모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성 멘트가 거슬렸다. 일어나 두리번 거리고, JR 전철로 향했다. 개찰구는 닫혀

있었지만, 불들이 들어와 있다. 반가웠다. 자세히 보니 첫차가 5시 53분이었다. 일본이 처음인 나는 표 끊는 것도 어렵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좋다. 여유롭게 티켓 발매기를 구경했다. 기차가 올 때 까지 할 것도, 갈 데도 없어 플랫폼에서

책을 봤다. 피로사회. 제목이 내 지금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차가 왔다.

텐노지 급행인데, 대략 5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창밖 풍경이 신기했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둥둥 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모든 게 낯선 환경. 멀쩡한 한 사람이 바보가 된다. 글도 못 읽고, 방향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나는 표류한다. 졸다 깨다를 반복해 텐노지에서 내렸다. 모모다니 역으로

가기 위해 JR 간조선을 기다렸다. 토요일 아침 7시인데 학생들이 많았다. 중, 고등학생도 있었지만 초등학생들도 보였다.

얘네는 주5일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아침 7시에 등교해야 하는 초등학생들의 처지가 좀 안쓰러웠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교육열이 강한데, 그런 사회적 풍조 속에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키 위해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 같다. 역에서 내려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가까웠다. 오기 전 찾아오는 동영상 보기를 잘 했다. 문 앞에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타지에서 조우.

자다 깬 부시시한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아직 계획한 시각이 아니기도 하고, 몸도 피곤해 한 시간 정도 잤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오사카성, 오후에 우메다이다. 아침은 츠루하시 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일본 식당은 점원이 주문

받는 곳도 있지만 손님들이 직접 기계에서 메뉴를 보고 표를 끊는 시스템이 보편화 돼 있다. 이 집 역시 기계가 메뉴를 뽑아

주는 시스템인데, 바빠서 주문 시간을 줄인다거나, 나 같은 외국인들의 경우 효율적일 것 같다.

예전에 오사카성을 왔던 현지와는 쪼개졌다. 텐마바시에서 내린 채연과 나는 조금 헤맸다. 지도를 보면서 이동했지만,

은근 방향치인 나는 독도법에 익숙치 않다. 여자인 채연은 말 할 것도 없고. 다행히 채연은 적극성이 나보다 뛰어나기에 지도를

가리키며 도꼬데스까?를 외쳤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라고 하는 지

대략 30년 살아온 눈치로 이해하고, 아! 쏘데스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로 회답하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저 멀리서 천수각 위용이 드러났다. 예전에 잠깐 봤던, '오다 노부나가',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나오던 곳.

소설 내용은 다 까먹었지만, 그래도 늘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멀리서 성벽의 위압감이 대단했다. 그 옛날에

어떻게 돌을 쪼개고 날랐는지 궁금증이 일만큼 성벽은 매우 높고, 두터웠다. 적에게는 난공불락의 근심거리였겠지.

해자를 건너 성 입구로 향했다. 길이 일자가 아니라 제법 꼬불꼬불했다. 해자가 뚫렸을 경우를 대비한 설계 같다.

적들을 미로 속에 몰아 넣고, 공격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이 엿보인다. 조금 올라가니 전국시대 각 영주들의 문장이

새겨진 바위들이 보였다. 전국통일을 한 위엄이며, 자랑이다. 마치 하나라가 중국 전토를 통일하고, 모든 무기를 회수해

다시는 전쟁이 없을 거라는 의미로 정을 만들었듯이. 천수각 안으로 올랐다. 8층에 오르니 오사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탁트인 경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 해방감을 준다. 이 곳에서 오사카를 지켜봤을 히데요시를 떠올렸다.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자자손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성을 쌓았겠지만 히데요시 사후 불과 10년도 못 넘겼는데.

건물 안은 아주 많이 현대화 돼 있다. 전국시대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사용했던 갑옷과 무기들

건축양식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우리나라 지방 박물관을 갈 때 마다 보았던 촌스러운 재연 같은 것들도. 보면서 문화재 개발과

활용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았다. 말로는 창의적인 소재, 역사 컨텐츠 떠들지만 막상 보면 없다. 새로운 방식을 생각지 못 하는

공급자도 문제겠지만 역사에 관심 없는 수용자에게 좋은 것을 준다한들 받아들여지겠는가. 이런 역사적인 장소는 학습의

장인 동시에 상상의 소재다. 단순 사진 찍고 가는 코스로써 기능한다면, 역사컨텐츠는 그냥 말에 그칠 뿐이다.

경내를 돌고, 내려가는 길에 초등학생들의 유도대회를 봤다. 우리나라에서 태권도가 국민 체육이듯, 일본의 국민체육을

방증하는 것 같았다. 매화가 없는 매화정원을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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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방배동외톨이